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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다오 아줌마 Mar 28. 2024

아들 하나 딸 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아들이 태어나고 딸 둘이 또 태어나고 세명 모두 중국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봤다. 3군데를 갔었는데 결국 마지막은 중국의 사립 병원이다. 


이렇게 아픈지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데 자연분만을 선택해서 7명의 의료진이 들어오고 원장이 배를 눌러 짜내어 아들이 나왔다. 낳고 내 배를 다음날 쳐다봤는데 멍이 들어 있었고 배는 쭈글쭈글.


말이 안 통하니까. 가슴 마사지를 받고 젖을 잘 물리지 못해 젖이 불어서 젖몸살이 왔다. 낳는 고통보다 더했다. 젖몸살 부들부들.. 


아이 셋 모두 그렇게 젖몸살을 피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그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30분을 해도 젖몸살이 사라지지 않는 잠 못 드는 새벽녘에 가슴 마사지받으러 잦은 왕래가 이어졌었다. 


조리원 필수 2주라는 시스템이 없는 중국에서  내 몸을 갈아 넣으면서 육아했던 것 같다. 지금은 막내가 6살이니 웃고 있지만 그땐... 많이 울었다. 


혹시 중국에서 분만을 하실 예비맘이 계신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부분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많은 기억이 상실되었지만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 


그리고 둘째도 같은 병원 행. 앗! 의료진을 나를 알아봤다. 어찌나 분만실에서 기록적인 진상을 부렸는지 기억을 하시더라.. 난감했다. 그래도 낳아야지 어쩌겠어.. 


둘째는 첫째보다 빨리 나온다는 말에 가진통으로 헛걸음을 3번 했고 정말 이 때다! 싶었을 땐 양치기 소녀가 되어 남편은 나를 믿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시부모님과 아들이 외지에 시아버지 현장에 같이 있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떠먹는 요구르트를 걸어 다니면서 먹다 넘어져서 혀가 잘렸다고 했다. 그때 우리 둘째 딸은 생후 28일이었다. 


11월 생인 우리 딸 생후 28일 만에 그 추운 겨울에 싸고 들고 업고 안고서 차로 5시간을 달려 아들에게 향했고 남편도 출장 중에 비행기로 날아왔다. 


 하지만 너무 다행이었다. 우리 남편이 그 당시 출장 가 있던 곳이 치과의료진 들고 함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소식을 듣고 출장 중에 갑자기 가야겠다고 했을 때 마침 그 자리에 우리 아들이 가야 했던 구강전문병원에 깊은 관계가 있는 관계자가 있었다. 바로 전화해 주었고 우리 시부모님은 울면서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하고 그 모든 게 하루 만에 이루어진 게 기적이라고 했다. 


가보니 눈앞에 펼쳐졌다. 구강전문병원이라고 해서 입술이 두 갈래로 갈라진 어른이나 아이, 설염, 구강암 등 입 안팎에 있는 모든 병 전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밤에 타지에서 와서 대기하고 있는 병원이었다. 병원 복도에 박스를 깔고 돗자리를 펴고 대기하고 있었다. "중국은 꽌시가 다 해 먹는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내 아이가 제일 소중한 법이었다.


우리 집은 보모 두고 가정부두면서 사는 갑부집안이 아니다. 그때 참 운이 좋았다. 우리 남편이 잘 한일 중 베스트 3 안에 드는 일이다.


아들은 혀가 잘린 것이 아니고 목 안에 달랑거리는 목젖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찢어진 거였다. 수술 후 회복하고 말을 재잘재잘 했고 사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사진출처-나무위키


그렇게 전투육아를 하고 한국화장품 가게라는 걸 오픈하게 된다. 

한국 화장품 팔면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지금은 가게를 운영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좋은 인연이 되어 연락하며 힘 되며 지낸다. 소중하고 감사하다. 육아가 끝나면 나의 여행 메이트가 되어 주지 않을까 그렇게도 생각한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 고향으로 가게 되고 새 집으로 이사 갈 때마다 아이를 하나씩 얻게 된다. 나 새집이랑 잘 맞나? 왜 거기서 셋째가 또 나와.. 아들은 초1, 둘째 딸은 5살 막내를 만나게 된다.


중국은 아이를 낙태하는 것이 합법이다. 산부인과를 가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아이를 원하냐 원하지 않냐"는 것이다.


  셋째를 가졌을 때 우리 부부는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었다. 돌아온 말은 너무 일찍 왔다 너무 작아서 10일 정도 더 키워야 잡아서 빼낼 수 있을 때 날짜를 다시 잡아 보자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쇼킹했다. 10일을 더 키워서 오라니.. 이건 세포가 아니었다 엄연한 생명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원하지 않았지만 나는 벌써 아이를 가엾게 느끼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여호와 증인들과 교류하고 있었고 (중국에도 여호와 증인이 있다) 그 친구들에게 나의 셋째 알렸다.


그리고 <한 태아의 일기>라는 글을 프린트해서 나에게 주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은데.. 낙태를 생각하고 있던 나를 눈물 쏟게 만들었다. 



한 태아의 일기


10월 5일:

오늘 내 새명이 시작되었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신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어. 그리고 난 여자가 될 거다. 난 금발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질 거야.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어. 내가 꽃을 사랑하게 될 것까지 말이야.


10월 19일:

어떤 사람들은 내가 아직 실제 사람이 아니고, 엄마만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실제 사람인 걸. 조그만 빵 조각이 실제 빵인 것처럼 말이야. 나의 엄마도 존재하시고 나도 존재하고 있단 말이야.


10월 23일:

이제 나의 입이 열리기 시작하는구나. 좀 생각해 봐. 1년 정도 지나면 나는 이 입으로 웃기도 하고, 또 나중에 말도 하게 될 거야. 나는 이 입으로 맨 먼저 엄마하고 말할 것도 알고 있지.


10월 25일:

오늘 내 심장이 스스로 뛰기 시작했어. 내 심장은 오늘부터 쉬지 않고 부드럽게 내 한평생 뛸 거야.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면 지치게 되고 멈추게 될 거야. 그러면 난 죽게 되겠지.


11월 2일:

난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어. 나의 팔과 다리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지. 하지만 내가 두 다리로 일어서서 엄마의 두 팔에 안기고 이 예쁜 두 팔로 꽃을 꺾어 아빠에 안기려면 아직 오래 기다려야 해.


11월 12일:

나의 손에는 조그만 손가락이 여러 개가 생기기 시작했어. 이렇게 작은 것이 참 이상하지! 난 이 손가락으로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수 있을 거야.


11월 20일:

오늘이 되어서야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내가 여기 엄마의 심장 밑에 살고 있다고 말해 주었어. 오, 엄마는 정말로 행복할 거야! 엄마, 행복하지, 응?


11월 25일:

아마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 줄까 하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내가 귀여운 딸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어. 나를 ‘케씨’라고 불러 주었으면 좋겠어. 난 이제 많이 자랐어.


12월 10일:

나의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어. 머릿결은 매끈하고 밝고 윤이 난다. 엄마는 어떠한 머리카락을 가졌을까?


12월 13일:

난 이제 막 볼 수 있게 되었어. 사방이 깜깜하다. 엄마가 나를 세상으로 내어 보내 주면, 세상은 밝은 햇빛으로 가득 차 있고, 또 꽃들로 가득 차 있을 거야. 하지만, 난 무엇보다 엄마를 보고 싶어. 엄마, 엄마는 어떻게 생겼지, 응?


12월 24일:

엄마가 나의 마음의 속삭임을 들으실까? 어떤 아이들은 세상에 나올 때 좀 아파서 나오기도 한다지. 하지만 난 심장이 튼튼하고 건강해. 나의 심장은 ‘툭—툭’, ‘툭—툭’하면서 고르게 뛰고 있어. 엄마, 엄마는 건강하고 귀여운 딸을 하나 갖게 될 거야!


12월 28일:

오늘 엄마가 나를 죽였어.

—작자 미상—


https://wol.jw.org/ko/wol/d/r8/lp-ko/101980366?q=%EC%9D%BC%EA%B8%B0&p=doc



여호와 증인 중 한 분이 프린트해 준 한 장의 종이를 받고 우리 셋째는 그렇게 빛을 보게 됐다. 


그 덕에 빛을 보았지만 현재 나는 여호와 증인분들과는 교류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쁜 셋째를 만나게 해 줬는데..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안 생기는 신앙심을 어찌하겠는가ㅠㅠ 


웃으며 얘기하지만 생각해 보면 너무 아픈 일이야. 셋째에게 너무 미안하다.


내가 아들과 딸을 다 가졌다는 세상의 시선 때문에 셋째를 버리려고 했었다. 내 인생도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현재 셋째는 말을 제 멋대로하는 동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 중에 있지만, 너 없이 내가 어찌 살아가겠냐. 


유치원 데려다 줄 때 차안에 문을 잠궈버리고 내리지 않겠다고 반항하는 너지만 그래도 엄마는 사랑해 우리 둘째 딸.


사연 없는 집이 없단 말이 딱이다.


아들 하나 딸 둘. 말 좀 잘 들어주세요. 

부탁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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