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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어때요?

by 지안

마음을 겨우 다잡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기를 며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도, 버스 안에서도, 정류장에 내려 걸어가는데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표정도 하나 변하지 않고, 그냥 흐르는 눈물을 바라볼 뿐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눈물이 흐르자마자 차게 식어버렸다.


흐르는 눈물을 겨우 훔쳐내며 학원에 도착했다.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핸드폰에 비친 눈을 보며 운게 너무 티나진 않는지 확인했다. 눈꺼풀은 조금 무거워 보였고, 다크서클은 푸르딩딩하게 보였으며 흰자는 조금 빨갰지만 추워서 그런가보다 싶을 정도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원장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서 내 담당 친구들의 문제풀이를 도왔다. 오늘따라 친구들이 질문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함께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4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하기가 힘들다는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기도 하고, 힘내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오늘따라 멍하니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에게 무엇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어떤 점이 힘든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원장 선생님께 갔다가 아주 귀여운 아이도 보며 잠시 힐링하기도 했다. 동글동글한 안경에 똘망똘망한 눈을 한 아이가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김밥을 싸서 가져왔다며 권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재료로 싸는 것만 했다고 말하는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고 생각하며 맛있게 김밥 몇 알을 얻어 먹었다.


또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일하기를 반복. 그렇게 퇴근시간이 되었다.

퇴근 길에 원장 선생님이 따뜻하게 밥 먹고 가자고 권하셨다. 날도 추우니 나는 지글지글 끓는 돌솥비빔밥을 먹고, 선생님은 뜨끈한 한우육개장을 드셨다. 선생님께서 덜어주신 육개장도 조금 맛보았다. 맛이 좋았다. 따뜻하고, 건강한 맛이었다.


여느때와 다름 없는 퇴근 길, 데려다 주시던 차 안에서 학원 아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선생님께서 "요즘 마음이 어때요?" 물으셨다.


무겁지 않은 분위기였고, 가벼운 안부를 묻는 말이었는데,갑자기 울컥했다. 조수석에 앉아있어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지 않는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 잠시 심호흡하며 겨우 눈물을 참아내고, "괜찮을 때도 있는데, 가끔은 우울해요."라고 대답했다. 말하자마자 문득 깨달았다. 나에게 마음이 어떠냐고 물어봐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구나.


궁금하지도 않은 내 근황을 형식적으로 묻거나, '요즘 뭐하면서 지내?' 내 상황과 본인을 비교하고 그저 자랑하기 위해 캐묻는 질문이 있었을 뿐이다. 그 때마다 마음 속 깊은 곳 피해의식이 울컥 올라와서 '정말 짜증나. 아무도 내 근황을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마음의 안부를 묻는 선생님의 질문이 내 마음 깊은 곳을 톡하고 건드린 것만 같았다.


눈물을 겨우 참아내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눈물 수도꼭지가 열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뭘 해도 잘 할 사람이라" 라는 말 때문이었다. 너무도 듣고 싶은 말이었나보다. 누구든 나에게 마음이 어떠냐고 물어보고, 넌 잘할 사람이다라고 말해주길 바랬나보다. 내겐 그저 한 마디의 위로가 필요했나보다.


깨닫는 순간,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견고하던 댐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눈물은 주워 담을 수 없게 흐르고 있었다.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해보아도 눈물이 삼켜지지 않았다. 그 뒤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선생님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울어버린 탓에 조금은 당황하신 선생님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조수석에 있는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셨다. 위로의 말을 하시다가 상황을 전환하기 위한 말들을 해주셨던 것 같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으며 어찌저찌 반응해갔다.


감사함을 표하고 내일 뵙겠다는 말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횡단보도 끝에서 깜박이는 초록불 아래 10, 9, 8, ..., 3, 2, 1 줄어드는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곤 또다시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려 걷기 시작했다. 영하 12도의 날씨에 빠른 걸음 때문에 날카롭게 차가운 바람이 얼굴이 아리게 불어왔지만 하염없이 걸었다. 흐르던 눈물은 차게 식어 볼이 얼얼했고, 눈물을 닦으려 꺼낸 손이 빨갛게 얼어있었다. 하도 손으로 문질러댔더니 볼도 코도 따갑게 아파왔다. 아픔을 느끼기 시작할 때 즈음 눈물도 사그라들었다. 한 시간 정도를 정처없이 걸었나보다.


집에 돌아와 겨우 진정한 마음으로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갑자기 터진 눈물에 당황하셨을 마음에 대한 죄송함, 위로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마음같아서는 꼭 안아드리고 싶었는데 운전중이라... 선생님처럼 좋은 분 만날 수 있어서 매일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꿀물 한잔 드시고, 편안하게 쉬세요.'라고 답장이 왔다.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물어봐주신 그 한마디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격려 한마디가, 이미 안아주신 것 이상의 위로가 되었다. 생각지 못한 안부의 한마디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


내가 받은 위로 그 이상의 안부인사를 전해본다.

요즘, 마음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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