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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han Apr 12. 2024

18. 미국 문화 그리고 직장 적응기

18. 뉴욕 퀸즈를 떠나 이사하다

아내의 가족들은 다 롱아일랜드에 산다. 아내는 언제나 이곳을 떠나는 것이 목표였다.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 좀 이해는 된다. 나도 어렸을 때 살던 곳에 오랜만에 가면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계속 그곳에 살았다면 그런 추억과는 다른 기분 좋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퀸즈에 살고 있던 우리는 먼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아파트가 아닌 싱글 하우스에 살고 싶었다. 한국과는 많이 다르게 이곳에서는 싱글 하우스를 많이 선호한다. 옛날의 프렌즈 시트콤만 보더라도 도시 아파트에 살던 커플이 아이가 생기자 교외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뒷마당에서 뛰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같이 고민해 봤다. 롱아일랜드에서 집을 살건지 산다면 어디 타운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 


개인적으로 비싼 집을 선호하지 않는다. 싼 집을 사서 빨리 모기지를 갚아 버리고 빚 걱정 없이 살고 싶었다. 그리고 아내는 롱아일랜드를 떠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우리는 리서치를 시작했다. 아무리 이 지역을 떠나고 싶어도 가족들이 있기에 너무 멀리 가는 것은 어려울 듯했다. 그리고 거의 집에서 일 하기는 했지만, 혹 맨해튼 사무소에 나갈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아주 먼 곳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보지역으로 뉴욕 북쪽 지역 교외, 뉴저지 전역 그리고 필라델피아 근처지역을 잡았다.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지역을 실제로 갔다. 몇 개의 타운을 잡아서 월별 모기지, 세금 등을 고려해 리서치 후 방문했다.

 리서치는 나름 재밌었다. 그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공원도 걸어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집을 당장 사기 보다 한 1년 먼저 살아보기로 했다. 잠깐 보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기에 우리는 마음에 들었던 뉴저지의 한 타운에서 렌트를 구했다. 기차역이 꽤 가깝게 있어서 맨해튼 갈 일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퀸즈에서 교사를 하던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뉴저지에서 교사일을 알아보기로 하고 당분간 아이를 보기로 했다. 뭐 데이케어 비용이 워낙 비싸니 아주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퀸즈에 있는 아파트에서 열심히 짐을 빼서 근처의 스토리지에 넣었다. 그리고 한 달간 한국과 프랑스를 여행하기로 했다. 지금도 이 직장에 감사했던 것은 한국에 있는 동안 일을 할 수 있게 이해해 줬다는 것이다. 뭐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도 한달간 한국에서 일하며 있었다. 그렇게 낮에는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도 좀 하고 밤에는 데스크에 앉아 일을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갈 때는 휴가를 내었다. 그리고 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즘 해서 코로나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에 돌아온 후 며칠이 안 되어서 뉴스는 코로나 얘기로 도배가 되었다. 렌트를 구한 후 우리는 U-haul에서 트럭을 빌려 스토리지를 비웠다. 그리고 맨해튼을 거쳐 뉴저지로 향했다. 처음으로 트럭을 운전해서 다리를 건너니 긴장이 많이 됐었다. 생각해 보니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 것이 참 많다. 변기를 바꾼다거나 문을 교체한다거나 잔디를 깎는다던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평생 할 일이 없었을 텐데. 


다리를 건너 렌트한 타운으로 가는데 구글맵이 자가용으로 타고 왔던 길과는 살짝 다른 길로 나를 안내했다. 한 5분 정도 시간이 추가되었고 거의 우리 타운에 도착하는데 갑자기 동네 분위기가 이상했다. 집들도 수리가 잘 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고 길거리도 지저분했다. 거기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취한 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뭐지 이거 잘한 결정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하나 지나자마자, 길거리가 갑자기 깨끗해졌다. 집들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렌트한 집이 있었다. 하지만 집을 알아볼 땐 다른 방향으로 와서 이렇게 가까운 지역의 타운이 위험(?)할 줄 몰랐다. 그리고 검색해 보니 상당히 범죄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뭐 지나고 나서는 겁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저녁에 밖에 나가는 것은 삼갔다. 가끔 아니 자주 그쪽 방향의 도로를 경찰차가 막고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미국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환경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세금과 학군 등으로 인해 집 가격 차이도 상당히 다르고, 슬프게도 지역별로 인종의 구분이 상당히 심하다. 그리고 상점들도 주민들을 타깃으로 하기에 업종도 상당히 다른 편이다.


여하튼 우리는 그곳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롱아일랜드에 없는 언덕이나 산들도 멀지 않게 있었고, 좋아하는 음식점도 찾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회사에서 메일이 왔다. 맨해튼 오피스를 당분간 닫을 예정이니 모두 집에서 근무하라고. 뭐 나야 원래 집에서 근무를 해서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이사할 때 가끔 출근할 것을 고려해서 집을 구했는데 그마저도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뉴저지에서 렌트로 사는 동안 출근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거의 2주에 한 번은  주말에 장모님 댁을 갔다. 롱아일랜드에 살던 때처럼 토요일 아침을 같이 했다. 그리고 이게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 한 시간 반정도 거리였지만 도심이 막힐 때는 두 시간 이상씩 걸리다 보니 토요일에 서너 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일 년을 채우고 우리는 어디에 집을 살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즘 우리는 둘째를 가졌다. 일년을 더 이곳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을 렌트할 것인가. 아니면 집을 살 것인가. 산다면 어디 지역의 집을 살 것인가. 그리고 이 때 집 값이 전국적으로 더 오르기 시작했다. 산다면 언제가 살 타이밍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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