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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han Mar 11. 2024

2. 미국 문화 그리고 직장 적응기

2. 현실은 배고프고 부끄럽다.

그렇게 공기업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넘어왔다. 장인어른은 결혼 전까지 나 혼자 쓸 조그만 방을 2층에 내어주셨다. 미국에 넘어오기 전 뭘 할까 고민했었던 통계 그리고 데이터 관련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나에게 눈치를 주지는 않았지만 민망함은 감추기 힘들었다. 서른이 넘어서 미래의 장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고 근처에 도서관을 다녔다. 그리고 낮에 시간이 될 때는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뭐 모두의 삶이 비슷하겠지만 산책을 하며 어떤 날은 너무나 눈 부시게 평화롭고 행복했지만 어떤 날은 내가 이곳에 와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난 여기서 개똥을 줍고 있네... 동기였던 친구들이 SNS에 출장을 다니는 모습을 보며 미국에 가는 것을 뜯어말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장인어른 댁의 한 방에서 이번엔 아내의 할머니 댁 2층으로 사는 곳이 옮겨졌을 뿐 여전히 직업은 없었다. 사실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제 영주권을 신청했기에 워킹비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 당장에 워킹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혼공부한 경력을 가지고는 특출 나지 않는 한, 데이터 관련 분야에 경력 없었기에 객관적으로 보아 누구도 나를 고용하고 싶어 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대학원을 지원했다. 솔직한 마음은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학을 지원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깜짝 놀라면서 "우린 그런 돈이 없 왜 비싼 대학을 가려고 해? 이유가 있어?"라고 했다. 내 생각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취직이 잘 되는 거 아닌가 했지만, 아내 말은 누군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집이 부자인가 보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 똑똑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인이 학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아내는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아시안인들이 미국 학교를 먹여 살리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필요할 수도 있어 하지만 여기선 크게 상관없어." 생각이 갈리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당장 돈은 아내가 벌고 있는데 뒤늦게 큰 빚을 질 수는 없기에 싼 대학을 찾아 등록했다.

그러는 사이 워킹비자가 나왔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경력을 가지고 데이터 관련 분야에 보이는 데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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