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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숲 May 17. 2024

[엄마는처음]6십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기적인데(2)

출산에서 첫 생일까지

코로나가 완전 종식되기 전에 아기를 만났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준종합병원쯤 되는 병원이라, 입원해 있는 동안 아기와 일체의 접촉이 금지되었다. 하루에 한두 번 병실 너머로 아기 얼굴 보는 게 다였는데, 그렇게 되고 나니 내 애가 맞기는 한 건지 영 실감도 안 나고, 저 빨갛고 자그맣고 눈가가 촉촉하고 늘 자고만 있는 아가가 내 아기가 맞는 건지 부모 중에 누구를 닮았을까, 눈뜬 모습이 궁금했지만 퇴원할 때까지 보여주지 않았지.


퇴원할 때 우리 아기가 갖고 있는 특징, 신체에서 선천적으로 상피 탈락이 보이는 부분에 대해 설명 듣고 또 심각해져서 폭풍 검색_역시 예상대로 되는 게 없다, 없어_ 또 내원을 약속하고 조리원 가는 길. 퇴원하고 조리원에 가는 길은 너무 조심스러웠는데, 더군다나 초보부모인데 아기를 안아본 적도 한 번도 없는지라! 너무 작고 작은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는 것도 너무 조심스러웠다. 아기는 다행히 안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신생아는 진짜 잠을 많이 잔다(그때는 그게 그리워질 줄 몰랐지).


모유수유. 이거 진짜 풀 말 많은데. 결론적으로 12개월이 지나는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이것도 예상하지 않은 일. 모유, 분유 전혀 아무 생각 없었는데 1) 생각보다 젖이 잘 도는 몸이었고  2) 아기가 잘 먹어주었고  3) 조리원에서는 마치 모유 뽑는 기계가 된 기분이니까, '그냥 해보지 뭐!'라고 했던 게 여태까지 왔다. 지금도 하긴 하는데 지금까지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까지는 해볼까 싶기도 하고.


잠. 신생아는 정말 잠을 많이 잔다. 먹다 잠들어서 깨워야 할 정도로. 빠는 힘이 약하니까 젖 빨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조리원에서 에어컨을 살짝 틀기는 했는데, 너무 어린 아가라 트는 것도 너무 신경 쓰였었다.


3.4kg로 태어난 아기는 지금 9.6kg이 되었다. 1년 만에 약 3배 가까이 자랐다. 뒤집기, 배밀이, 네발기기, 앉기를 거쳐 지금은 열심히 온 방을 누비는 중이다. 사방팔방 책들을 다 뽑아버리니 이것 참, 꽈당하기도 일쑤. 이가 위아래 6개가 나서 간지러운지 다 씹어버리니, 너.. 혹시 염소니? 책들은 다 북북 찢어버리고 이제는 엄마아빠 책까지 노리다니. 다리 힘이 너무 좋아서, 소파도 오르려고 엄마아빠 침대도 오르려고 해서 쫓아 당기느라 늙은 엄마는 무릎에 멍이 들고 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느라!



매일매일의 시간은 뭉텅이로 빨리 가는 것 같으면서도, 참 안 간다.

미세먼지라도 가득한 날이면 산책도 못 나가니 더욱 시간은 안 가는데. 아기랑 침대 위에서 구르고 살 부비는 시간은 참 행복한데, 출산 전의 삶은 아득한 전생으로 느껴진다.


아기를 낳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생에 행성충돌 급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에 전과 후가 여실히 다르므로 아기가 있어야 어른이 된다고 했던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는 된다. 









6십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기적인데, 엄마도 아빠도 너도 기적 같은 시간을 열심히 살기는 해야겠다.

내가 너를 이 세상에 소환한 게 미안해지지 않도록.


집에서 조촐히 차려준 생일상. 집에 있는 초가 저 숫자초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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