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혁명이다.
역사에서 경제를 읽다니, 세상은 너무나 빨리 바뀌는데 흘러간 옛날 이야기가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하지만 AI가 모든 걸 안다는 현대 사회에서도 ‘사용하고 싶은 것에 비해 자원의 양이 적다’는 경제 문제는 모두의 숙제!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은 경제 문제를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했고, 우리 조상들 역시 그 시대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조상들의 최선의 노력과 그 결과를 낸 과정을 알면 여러분은 넓은 시야로 보다 나은 경제적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는 나한테는 엄청 길어보이지만, 지구 나이에 비해서는 짧디 짧으니까.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백제 온조왕. 백제 온조왕은 고구려왕의 아들이면서, 백제를 세운 시조왕이 된 인물이다. 당시 온조왕자 입장에서는 갑툭튀한 유리왕자가 왕위계승자로 유력해지자 어머니와 형비류가 함께 남하했다.비류는 미추홀(*오늘날 인천광역시 부근) 근처에 자리를 잡은 것과는 달리 온조왕은 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후에 비류가 사망한 후 비류를 따르던 무리들이 온조왕을 따르게 되면서 나라의 이름을 백제로 세웠다고 전해졌다고 한다. 비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온조는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온조가 도읍을 정한 위례성은 오늘날의 한강 유역이라는 의견이 많다.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한강 유역 근처에 그맘 때쯤 역사 유물들이 쏟아지고 있고. 한강 유역 정복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첫째로 넓은 한강에서 물을 얻기 쉬워 농사짓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둘째로, 한강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기 때문에 인구와 물자가 이동하는 통로였다. 셋째로, 한강을 통해 바다를 나아가면 한반도 밖 다른 나라와 교류하기에도 보다 편리했다.
한강이 한반도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온조왕 이후 한강을 두고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경쟁은 계속되었다. 삼국시대 각국의 땅이 가장 넓었던 전성기 시절을 살펴보면 한강을 차지했을 때가 꼭 있을 정도였다. 고구려는 넓은 영토로 유명한 광개토대왕, 장수왕 시절에 한강 유역을 점령했고, 신라는 진흥왕 시절 한강 유역을 쟁탈해냈으며 이는 삼국 통일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위치만 보아도 한강은 여전히 의미 있지만, 농업이 주 경제 수단인 시절에는 한강이 훨씬 중요했을 것. 괜히 '농업 혁명'이라고 불리는 게 아닐 것.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무엇이 시대를 움직이는 중요한 수단일까. 나는, 여러분은 시대에서 중요한 그것을 찾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