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반]프로젝트1
by 이작
어쩌면 ‘그 곳’이 이 작가를 불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작가가 ‘그 곳'에 가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으나, 필연이었고, 계획하지 않았으나, 이미 기록되어있는 일이었다.
‘그 곳'을 뭐라 불러야 할까.
이 작가는 데뷔부터 주목 받은 소설가였다. 채 서른이 되기 전에 발표한 소설집이 그 해 모든 서점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이후 3년 동안 매해 1권씩 소설이 발표되었으며, 그의 소설을 안 읽은 사람이 더 적다고 할 정도로 많이 팔린 소설가가 되었다.
마지막 소설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후속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 작가를 잊었는가 하면 그게 아니고, 다양한 TV프로그램에서 그의 활약이 이어졌고, 소설은 아니지만 그가 발표하는 에세이 역시 적절하고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아주 가끔 몇몇 인터뷰에서 차기작 계획에 대한 질문이 있었지만, ‘아마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게 되면 보실 수 있을 거다.’라고만 말해왔다.
자기의 차기 작품은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가있어서 지금의 독자들은 소화할 수 없다. 그러니 시간이 더 흐르고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이 되었을 때 낼 수밖에 없는, 미래작이다라는 말을 간단히 녹여낸, 준비한 대답이었으나, 질문자들은 더 묻지 않았고 저 만큼의 대답에 만족했으며, 이 작가 또한, 입에 붙은 대답이라 그냥 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삼천포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젯밤이었다. 이 날도 오전에 TV예능 프로그램을 하나 마치고, 오후에 구독자 100만 기념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유튜브 채널의 초대에 응해 해당 콘텐츠 녹화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유튜버는 녹화에 와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다음 작품 기다리며 응원하겠다는, 의례적인 문자를 보냈다. 이 작가도 ‘응원은 현금으로'라는 그 만의 준비된 레퍼토리로 답을 보냈다. 그러고 말 일이었다.
그런데, 문득 아 이제 슬슬 작품을 써야하려나, 생각했고, 간만에 마음이 동해 소설을 쓰기로 했다. 캔맥주를 하나 따고, 노트북을 열고, 글감을 모아놓은 에버노트에 접속하고, 한글을 띄웠다. 그런데, 깜빡이는 커서만 쳐다보고 있을 뿐, 키보드 단추 하나 누를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도 그제와, 그그제와, 그 한달 전과 다르지 않았으므로 그냥 그제와, 그그제와, 그 한달 전처럼 노트북을 다시 닫고 TV리모콘을 들면 그뿐이었을 하루였다.
그러나 어젯밤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글이 안풀리니 바다라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사람들은 고민이 있으면 바다를 찾을까, 바다에서 왔으니 바다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엄마와 바다가 비슷한 단어인 언어가 무엇이 있나 떠올리다가 아침이 되었다.
딱히 남해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왕이면 눈을 좀 붙일 수 있는 먼 거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 속에 삼천포항이 스쳤다. 이 작가 거의 평생을 따라다닌 ‘삼천포'였는데 왜 이제야 생각이 났단 말인가.
이 작가에게 ‘삼천포’ 라는 별명을 처음 붙인 사람은 S대학의 박 교수였다. 박 교수 역시 소설가였는데, 이 작가의 데뷔작을 보고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며, 삼천포도 이런 삼천포가 없다며 힐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당시에 이미 이 작가의 소설은 베스트셀러였고, 그의 글이 주는 재미에 빠진 독자들은, 되려 박 교수를 욕했고, 박 교수의 심사평은 명작을 못 알아 본 굴욕짤로 박제되었고, 삼천포는 그 유래와 맥락상의 뉘앙스를 벗어나 이른바 ‘삼천포 스토리텔링’은 이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로 회자되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을 하는 뉴스 리포트나 드라마 대사가 있으면, (삼천포가 합병된) 사천시 시민단체들은 지역을 무시하는 말이라며 불만을 쏟아냈고, 그때마다 사과문을 발표되곤 했는데 유독 이 작가에 따라 붙는 수식어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해인가 사천시 의회 의원 선거 때는 이 작가를 명예시민으로 위촉하자는 주장을 하던 후보도 있었다.
삼천포 스토리텔링은 무언가 하니, 짐작하겠지만, 어느 한 주제로 시작하는가 싶다가 따라가보면 영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의 글은 그 따라가는 과정이 정신 못차리게 재미있어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삼천포 화법이 그 만의 스타일로 확실하게 각인된 것은 3번째 소설을 발표 하던 때, TV토론에 출연하고 나서였다. 연예인이나 재벌2세들의 대마초 흡연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패널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작가는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만을 쏟아내다가 상대편의 반발이 이어지고, 사회자가 급기야 주제로 돌아와 달라고 주의를 줄 때, 몇 마디를 덧붙이자, 갑자기 그가 앞서 했던 쓸데없(어 보였)던 이야기가, 상대편 모두의 입을 틀어막게 하는 논리로 완성되는 순간, 시청자들은 박수를 터뜨리고, 토론이 주는 쾌감에 찬사를 보냈다.
이 작가가, 정작 찬성이었는지 반대였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훗날 프로그램 담당 PD만이 아무리 영상을 돌려보아도 그의 찬/반을 알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시청율 일등 공신에게 누가 될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삼천포로 가자고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지만, 정작 이 작가는 삼천포를 가본 적이 없었는데, 검색창을 뒤지다가 기차는 여러 번 갈아타야 하기에 버스터미널 가는 택시를 잡았다. 삼천포를 가는 버스 시간을 검색하다가, 실제로 그렇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피곤하기도 했고, 괜한 뻐김도 생겨서 기사에게 말을 붙였다.
“기사님, 삼천포항까지 택시 대절하면 얼마나 나와요?”
“아유, 급하신가봅니다. 요즘 그렇게 하면 꽤 비쌉니… 어? 어? 혹시 이 작가님 아니세요?”
기사가 자기를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 올라올 때, 빈 차로 와야하는 데... 혹시 삼천포에 묵으십니까?"
이작가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퉁명스럽게 뱉었다.
“넉넉히 드릴테니 갑시다.”
화장실이 급해 어느 휴게소엔가 들렸다가. 자기를 알아본 기사에게 신경이 쓰였고, 괜찮다는 기사에게 굳이 국밥을 한 그릇 대접하고, 이 작가는 입이 깔깔해 우동 하나를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커피를 한 잔하고, 담배를 한 대 같이 피우고.
“저, 삼천포에는 어쩐일로? 취재차 가시는 거죠? 이야. 대작을 준비하시는가 봅니다. 제가 작가님 작품은 다 읽었거든요.”
귀찮음을 피하려고 앉은 택시를 대절했더니, 되려 더 귀찮은 일이 생겼음에 짜증이 났다.
자꾸 말을 걸려는 기사를 피해, 휴게소를 떠나면서부터는 아예 대놓고 눈을 감아버렸다.
문득 눈을 떴을 때, 택시는 삼천포항에 세워져있고, 주위는 어둑어둑하고,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곤히 잠든 이 작가를 깨우지 않으려고, 밖에서 담배나 피우나보지 생각하며 택시를 나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오는 느낌이 매우 낯설었다. 삼천포가 이렇게 한산한 항구였나. 택시 기사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는데, 저 멀리 이야기들이 모여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이야기들이었다. 그 곳, 삼천포항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모여 있었다. 이 낯선 모습에 이 작가가 살짝 뒷걸음을 치려는 순간, 그를 눈치 챈 이야기 하나가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