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너한테 평등을 가르친거니?
평등이란건 정말 좋은 걸까?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웠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정말 그럴까? 모두에게 투표권이 있다고 해서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평등이라는 말이 싫다. 세상 어디에도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투표 용지를 한 장씩 가지고 있다고 해서 평등한 건 아니다. 모두가 자유를 보장받는다고 평등한 건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평등한 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다르다. 아주 다르다. 낳아준 부모님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다. 운동을 할 때 땀을 조금만 흘리는 사람도 있고 많이 흘리는 사람도 있다. 평생 흡연을 해도 그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을 해도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은 아주 다르다. 가지고 있는 재능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전부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고 배운다. 여기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한다.
나랑 똑같은 시간을 공부한 친구가 성적이 더 오르면 왠지 기분이 나쁘다. 같이 운동을 시작한 친구가 나보다 몸이 빨리 커지면 괜히 질투가 난다. 같이 열심히 노력했는데 나만 성과를 내지 못하는 그런 기분, 다들 한번씩 느껴봤을거다. 사실 남들이 우리보다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해서 기분 나쁠 이유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도 충분히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내 옆의 친구가 머리가 조금 더 좋아서 성적이 빨리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한 나도 성적이 안 오르지는 않는다. 그 정도가 친구보다 낮을 뿐이다.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몸이 빨리 커진 친구는 타고난 근성장을 보이는 사람일 뿐이다. 소화기관이 아주 튼튼해 영양분을 빨리 흡수했을수도 있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 몸도 성장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근육이 커졌다면 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본거다. 친구가 나보다 잘했다고 해서 내가 만들어낸 성과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작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들이 더 잘돼면 배가 아프다. 평등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모두가 1의 노력을 해서 1을 얻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1의 노력으로 0.5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1의 노력으로 10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10이 부러워도 어쩔 수 없다. 부러워할 시간에 20을 해야한다. 그게 진리이자 왕도이다. 우리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노력의 가성비를 따진다. 내가 해낸 노력이 남들의 노력보다 볼품 없어보이면 자존감이 폭삭 무너질 때가 있다. 내 노력이 가성비가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똑같은 노력을 투자한 사람들이 똑같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렇다, 세상에 평등이란 건 없는 거다. 오직 공평하고 공부할 기회를 얻는 것이 전부다. 공평하게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전부다. 그러러니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노력을 스스로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노력에 가성비 따위의 단어는 붙이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평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