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는 특별한게 아냐] 누구나 힘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세상에 내가 쓰일 곳이 없나?"
"나는 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난 남들보다 모자란 사람인가"
20대 후반 취준 암흑기 시절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한국에서 추구하는 일반적인 경로에서 이탈한
사람이다. 단지, 취업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몇 년을 집에 있었다.
사람들과의 교류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누군가에겐 히키코모리였을 것이다.
나처럼 이방인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내가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이 여정이 힘이 되길 바란다.
몇 년 전, 취준 2년 그리고 또 취업 포기 후 2년~3년을 자발적으로 집에 있었다.
연이은 취업 실패 때문에 무기력해진 채로 집에 있었던 것이라 자발적인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무서워서 집을 못 나가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정확히는 히키코모리는 아니었다.
요즘 사회현상인 자발적 쉼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냥 매일이 똑같고, 난 이제 뭘 해 먹고살아야 되나 싶었다. 30살 먹도록 취준만 한 나를 누가 뽑아줄까 싶었다.
난 정말 열심히 했었다. 다만 사회에서 "작은 회사 들어가면 못 옮겨, 처음에 잘 들어가야 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에
공포감이 들어 첫 시작을 대기업, 공기업으로 준비한 게 문제였다.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이 아닌 것을 해왔던 나는
더 이상 에너지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2년 넘게 대기업/공기업을 준비했지만 상태는 악화됐다.
필기, 면접까지 통과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엔 안 됐다.
나이 때문에 공기업만이 답인데, 면접 탈락까지 해본 이상
더 이상 서류, 필기, 면접
그 이상을 할 자신이 없었다.
토요일마다 수험표를 들고
시험 보는 나 자신이 지겹고 힘들었다.
취준이 꼭 대학교 수험생활 같았다.
아마 영업지원이 내가 원하던 진로가 아니라
부모님, 사회가 시키는 대로 정한 것이라
더 의욕이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쯔음엔 나이를 직시하고
중소기업, 소기업 가리지 않고 400군데를 지원했는데
서류 연락 하나 오지 않았다.
20 후반 여자, 무경력.
나는 점점 작아졌고 회사란 곳이 높고 무섭게 느껴졌다.
이때 이후로 취업을 포기했었다.
지쳤고, 더 이상 이런 짓을 하기 싫었고
그동안 시키는 대로 살았던 나는
정말 혼자 미궁에 빠진 기분이었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미술 말고 뭘 잘하는지 ,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
내가 사회에 쓸모가 있는지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한참을 게임, 드라마, 영화를 보며 갇혀 지냈다.
친구들과의 교류도 끊었다.
스스로가 창피했으니까.
연락 오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다.
매번 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맛도 없었고 그냥 무기력한 상태 그 자체였다.
엄청난 공백기가 나를 취업시장 앞에서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고
공백기 질문이 너무 무서웠다.
내일 아침이 나에게 의미가 없으며
아침에 눈뜨지 않고 그냥 하루가 마무리되어
영영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어두운 방안에 있었다.
밤 낮의 구분이 없었고
불을 켜는 것과 끄는 것의 차이도 없었다.
그나마 가족들이 있어서 끼니를 챙겨 먹었지만
가족들이 없는 시간에는 그저 누워서 잠을 자거나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
인생에서 최저의 몸무게를 찍었고
그 시간 속에 영영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때를 회상해 보면, 그때
주변에서 나에게 좀 더 다양한 사회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이끌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사회인에겐 더 이상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그런 상태로 몇 년간을 쭈욱 지냈다.
난 취업을 하고 싶었고, 사회에서 내 역할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 즈음 미생 드라마를 봤던 것 같은데,
저런 회사생활 드라마를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이
사회에 내 책상, 내 자리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더 지원활동을 해보았다면 어디든 들어갔을 수 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 괜찮은 회사를 고를 자신도 없었고
서류, 면접이라는 산맥이 나에게 너무 높아 보여서
넘을 여력이 없었다.
불이 꺼진 긴 터널에 혼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나는 자발적으로 집에 숨은 것 이기 때문에,
가끔 가족과 밖에 나가거나 혼자 밖을 나가서 돌아다니는 등의 활동은 문제없이 했고
필요한 경우 모르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나 사회적인 교류도 문제없이 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의 무의식 속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잔잔하게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언젠간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나의 과거를 알던 지인들과의 교류를 피하고 싶었고
세상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의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는 것이다.
남들 눈에 항상 바르게, 열심히 살았던 내가
이런 식으로 무너진 것을 보여주기 싫었다.
엄마의 친구들 중에서는 이렇게 된 나의 소식을 들으며
오히려 좋아하거나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도 힘들어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나도 힘들었다.
저런 것들이 너무 힘들었다.
...
아마 요즘의 쉼 청년들도 이런 상태에 있을 것 같다.
의지가 있어도 정말 뭘 어떻게 할지 모르고
용기가 없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내가 어떻게 용기를 내서 이런 상태를 탈출했을까?
다음 편에 이어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