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심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의존하지 마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기대나 실망, 원망의 대상이 아니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거나 준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서운해 말자. 당신이 선한 일을 했다면 돌고 돌아 어떠한 곳에서 당신에게 선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니까 선한 일을 지속하되 받을 것을 생각하지는 마라. 어떤 부모도 자식에게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며 그 힘든 육아를 참아내지 않는다. 그저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며 그 시간을 견딘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내가 준 만큼 받으려는 기대를 하면 깨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행동이어야만 한다. 상대는 당신에게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해라(만약 받는다면 감사하고).
참고한 서적은 많은 설교에서 참고서로 쓰이며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다. 쓰인 지 오래되었으나 마치 요즘 세상을 반영한 느낌이 든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기생충의 생활이지 사랑이 아니다. 당신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요구할 때, 당신은 그 사람에게 의존하여 기생하는 식객이다. 거기에는 선택도 자유도 없다. 그것은 사랑이기보다는 오히려 필요성 때문이다.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행이다.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서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더 잘 살기 위해 상대방과 함께 살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결혼 생활을 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각자가 독립된 개체로서 잘 서 있어야 기댈 수도 있는 것이다. 무조건 기대려 하고 상대에게 이해만 받으려고 한다면 기울어진 관계가 된다. 한쪽은 항상 감정적으로 져야 하는 것이다. 상대가 내게 너무 기댄다면 그것 또한 문제다. 상대를 혼자서 설 수 있게 돕는 것도 연인이 해야 할 일이다. 당신은 어떤가. 부모나 친구, 가족에게 너무 기대고 있진 않은가. 본인이 잘 서 있는지 확인하고 상대가 힘들어할 때, 당신이라는 안전기지에 기댈 수 있게 도와라. 그러면 당신이 힘들 때, 그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의존성'이란, 상대방이 자기를 열심히 돌보아 준다는 확신이 없이는 적절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자기가 완전하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SNS에 사생활을 너무 자주 공개하는 것, 누군가에게 자신의 하루나 일과를 알려야만 한다는 강박 등이 딱히 당신의 삶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혼자만의 가치로 간직하는 법을 배워나가자. 쉽게 얻는 즐거움 말고 노력해서 얻는 즐거움을 늘려가자. 의존하지 말고 누군가가 당신을 의존하게끔(가끔 와서 기댈 수 있게) 해보자.
수동적으로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수동성 의존적 성격장애'를 가진다. 그들은 언제나 사랑받기를 갈구하며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마치 자존심을 부리는 것, 밀당하는 것과 같이 상대가 먼저 마음을 열거나 다가와야 곁은 내준다. 그들은 '충분히 채워짐'을 느끼지 못하고 완전한 느낌도 갖지 못한다. 항상 삶의 일부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고 외로움을 참지도 못한다. 사람들은 흔히 외로움과 고독을 나쁜 것으로 생각한다. 적절한 외로움은 사색과 반성을 가능하게 한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고 어떠한 깨달음을 가능하게 한다. 너무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떨쳐 버리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있을 수 있음'을 배워보자.
나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하고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이 있어야만 앞으로 나아가는 성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지지가 없어도 나 스스로 일어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찾기도 하며 혼자만의 성취에 축하도 한다. 당신이 오늘 하루를 혼자 보냈어도 잘 산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일을 혼자 완성했다면 스스로에게 칭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의 지지가 있다면 감사히 받고 없더라도 조금도 타격받지 말자. 누군가 내 삶에 찾아와 주길 바랄 시간에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줘보자.
눈이 왔던 날
수동적인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자신의 가치도 낮아진다는 말이다. 군중에 끼지 못한다면 낙오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외부 상황과 상관없이 가치 있고 부족함 없는 존재다. 누구의 인정에 당신의 가치가 좌지우지되지 않게 하자. 상사의 칭찬이나 동료의 응원이 없어도 당신은 당신의 일을 잘해나갈 수 있고 또 스스로 칭찬할 수 있다. 누군가의 인정이 있어야만 성공한 일이 아니란 말이다.
수동적인 사람들은 또한 누구든 의존할 사람이 있으면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기대려 한다. 그들은 '자아정체감'이 낮은 것처럼 부유한다. '내적 공허감'이 크기에 자기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즐거움을 찾아 헤맨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성향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생각지 않고 타인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외우자. '확실히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사람들은 당신에게 내어줄 것이고 주변에 모일 것이다. 사람을 찾으려고 너무 간절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나갈 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강 주변이라도 뛰자. 헬스장을 끊었으면 꾸준히 나가자. 회사 일을 할 때는 딴짓을 하지 말고 집중하자. 동료에게 가끔 먼저 커피라도 한잔 사자. 일상에서 소소한 당신의 노력이 결국에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건전한 결혼/교제는 강하고 독립된 두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상대에게 자신을 너무 '동일화, 자아 확장'을 시킨다면 둘에게 유익하지 않다. 한쪽이 어깨가 무거워 무너질지 모른다. 도망갈지도 모른다. 타인은 당신이 될 수 없다. 당신의 자녀는, 남편은, 아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과 다른 독립된 존재다. 그들에게 당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당신이 너무 의존하는 순간, 관계는 힘을 잃는다. 진정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단단한 독립체가 되자. 나는 남편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고 내 손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작은 습관이 모여 큰 의존이 될지 모른다. 내가 바라는 게 많아질수록 서운한 일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당신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자. 또 타인에게 무엇을 은근히 바라지 말고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자. 말하지도 않고 안 해준다고 서운해하는 유치한 일은 하지 말자.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마약보다 해롭다. 마약은 잠시 기분이라도 좋게 하지만 의존성은 좋게 만들지도 못한다. 타인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을 기대하기보다 당신이 타인에게 깜짝 선물을 줄 방법을 생각해 보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여기까지가 먼저 매 맞아 본 언니가 해주는 충고였다. 나는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기도 했고 바라기도 했고 서운해하기도 했는데 남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너구리가 솜사탕을 물에 씻는 행위처럼 그 바보 같은 일을 반복했었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그 사람은 당신의 기대를 충족해야 하는 이유 없는 의무를 지게 된다. 정말 바라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정확한 문장으로 전달하자. 상대는 그것을 거절할 권리와 자유가 있고 당신은 수용할 의무가 있다.
지금의 나는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다. 기대야 할 때 기댄다. 도움을 받아야 할 때를 알고 요청한다. 내 사람들은 그럴 때 내게 온전한 쉼터가 되어준다. 이전의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알리고 끊임없이 확인받고 이해받고 인정받기를 갈구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혼자만 아는 나만의 일을 하고 스스로 격려하고 만족하고 마음의 충만을 느낀다. 나는 혼자 영화를 보기도 하고 외식을 하기도 하고 카페도 가고 운동도 한다.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고 가끔은 여행을 가기도 한다.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Becoming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Being으로 만족한다.
마지막이다. 진실로 누구도 당신의 가치를 쥐락펴락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 있을 수도 있고 함께 있을 수도 있다. 군중 속에 있을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당신이라는 세계는 당신만이 지킬 수 있다. 이제는 의존성, 외적으로 비치는 것, 누군가의 인정으로부터 자유하자.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 어떠한 일을 지속하는 일을 멈추고 당신 자신의 만족과 성취를 위해서 나아가자. 나는 믿는다. 당신이 스스로 해낼 것을. 그리고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인정을 해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