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자의 경험에 기초한 글이다. 편협함, 편중됨, 치중됨, 고정관념 같은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인가? 앞 뒤 꽉 막혀 대화가 통하지 않아 마주치기만 해도 피하고 싶은 부장님이 떠오른다. 그러나 자동화적 생각, 편중된 사고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아기가 울어서 부모가 달려왔다는 말을 들으면 분명 엄마였을 거라고 먼저 떠오른다. 아빠일 수도 있는데. '교통약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노인(할머니, 할아버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임산부나 아이들, 장애인 모두 교통 약자다. 우리 모두 자동적 사고를 하고 그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는다. 편중된 사고에 휘둘리지 않아야 우리는 폭넓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보자.
1. 새로운 취미 시도하기
하고 싶지 않은 활동을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도해 보자. 나는 '독서, 운동' 아니면 다른 취미는 조금도 없었다. 어느새 책을 읽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미술 수업 듣기다. 2시간 동안 펜으로 스케치를 하거나, 투시를 배우거나, 수채화로 풍경을 따라 그린다. 중학생 시절, 미술과 음악 선생님들이 특히 엄하셔서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 두려웠다. 그래서 예술하는 사람들은 다 예민해서 내가 접근하기 어렵다고 오해해 왔다. 그러나 그림 수업을 가보니 앞뒤 꽉 막힌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미술은 결과에만 의미가 있지 않고 과정에도 의미가 있었다. 2시간 동안 미술 도구를 쥐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것은 내게 성취감을 주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완성하기 위해 시간이 빠르게도 흘렀다. 아직 그림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그림이 사람에게 안정을 준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두 번째는 독서 모임을 가는 것이다. 혼자만 읽는 것으로 만족해 왔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독서 행위를 확장했다. 만약 혼자 했던 활동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해보라. 운동을 같이 하거나 요리를 같이 해보자. 같은 활동이라도 다른 접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꼭 맞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더 깊게 배워야겠다는 겸손한 태도도 가질 수 있다.
2. 새로운 사람 만나기
당신의 주변에는 분명 당신과 잘 맞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자신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곁에 둔다. 자신과 비슷한 일이나 취미, 상황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 즉,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만 연락한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러 새로운 모임에 가보라. 또는 잘 연락하지 않던 지인들에게도 문자나 전화를 해보자. 그러다 보면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두서없이 말이 많은 사람' 부류를 기피해 왔다. 한 모임에서 자신의 말만 길게 늘어놓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마음에서 미움이 생겼다. 일부러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의 과도한 적극성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많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귀한 존재다. 공동체 내에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내가 기피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잘 지낼 수 있는지 연구해 보자. 나는 아직 그 사람과 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분명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에 말이 두서없이 많고 사람들의 관심을 바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의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겐 별로인 사람일 수 있다. 그러므로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얘기를 나눠보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히 피로한 일이지만, 그래도 언제 어떤 인연이 생길지 모르니, 우리 사는 동안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지금 내 글을 읽는 당신과 조금의 연결고리가 없지만 이렇게 글로 소통할 수 있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