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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flower May 21. 2024

2화 아이의 속도

아이들이 등교 후 부산스러웠던 집안이 고요해지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집안 곳곳에 아이들의 흔적이 가득해서 당장이라도 치워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커피머신 앞으로 향했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커피 향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시원한 우유에 연유 4숟가락을 넣은 ‘연유라테’는 나의 최애 커피다.


달콤한 커피 한 모금에 피아노연주곡이 더해지니 근사한 브런치카페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작년부터  [마음 챙김]을 실천하고 있다.

아이들이 등교한 후 2시간 정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책도 읽고 성장을 위한 자기 계발 강의도 듣고 있다.

이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육아나 집안일 등 일상을 보낼 때 힘이 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김소영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다.



‘어린이를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우리 안에 꽁꽁 숨겨 둔 가장 작고 여린 마음들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천천히 헤아리는 시간이라는 걸, 어린이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와 마음,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책 표지의 글귀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들을 되돌아보게 되고, 유년시절의 내 마음속 어린이도 함께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변 지인들이 입을 모아 추천을 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됐다.

호흡을 가다듬고 기대감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 Image by Joshua Choate from Pixabay )


“재촉하지 마세요. 기다려주면 저도 잘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던 느긋한(성격 급한 엄마의 기준이다) 성격의 첫째 아이가 생각났다.

성격이 나와 반대인 첫째 아이에게 유독 ‘재촉’을 많이 한다.


  서툴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인데 왜 그리 재촉을 했는지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나는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첫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올해 3학년이 된 첫째 아이가 어제부터 학교에서 하는 생존수영을 시작했다.

 ( Image by fancycrave1 from Pixabay )


걱정이 많은 나는 생존수영을 한다는 공지를 받은 날부터 준비물과 생존수영 일정, 진행과정을 꼼꼼히 읽었다.

아이가 혼자서 챙기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했다.


 생존수영 전 날, 나는 아이에게 생존수영에 필요한 준비물을 말해 주었다.

준비물을 챙기라고 재촉하려던 찰나, 아이는 학교 유입물을 보며 혼자서 준비물을 야무지게 챙기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 선생님께서 물샤워만 가능하다고 세면도구는 필요 없대요. 그리고 교실에 8시 30분까지 가야 해요. 아~ 맞다! 수영복을 집에서 입고 와도 된다고 하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아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어야 해. 집에서 입고 가려면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입고 갈래? “


 아이는 ‘씩’ 웃으며

“ 네~! 엄마, 저는 설렐 때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잖아요. 내일은 6시 30분에 깨워주세요. 그리고 집에서 8시에 나갈 거예요."

아이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내가 깨우기도 전에 일어나 샤워를 했다.

등교준비를 마친 후 생존수영이 기대된다면서 시계를 계속 쳐다봤다.


아침부터 정신은 없었지만 설레어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시곗바늘이 8시를 가리키자, 아이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 어린이라는 세계 ] 책 속의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라고 말했던 현성이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어른의 속도가 아닌 내 아이만의 속도에 맞춰 그 세상을 함께 바라봐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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