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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서제미 Oct 17. 2024

30대 내가, 60대인 나를 찾아왔다 4

2001년 3월 28일, 자신감은 이제 실직자 여러분의 것

새벽운무에 둘러싸인 앞산은 아스라했다.  우리 집에는 커튼이 없다. 답답한 것을 견디지 못해 커튼을 달지 않았다.  설치해 놓은 거라고는 베란다에 있는 블라인드가 전부다.  그것도 한 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내리질 않는다.  


앞산이 보이는 안방 창문은 사시사철 열려있다.  "찬바람이 불면 제발, 안방 창문은 닫으면 안 되겠냐"는 말에 잠들기 전에 닫을 때도 있지만 그때뿐, 새벽에 눈을 뜨면 어느새 열려 있었다. 나는 무의식 속에서도 창문을 열었다.  


잠에서 깨면 내 눈은 항상 창문너머에 가 있다. 앞산은  자리 그대로 있지만 나에게는 매일 달랐다. 어떤 날은 바로 앞에 있는 선명했고, 어떤 날은 환상 속 세계처럼 몽환적이었다.  그런 날은 마치, 중턱이나 꼭대기 어디쯤에 내가 묻어놓은 타임캡슐이 있는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백 년 전, 혹은 천년 전, 아니면 우주 어딘가에 살고 있었던 내가 우리나라에 인간이라는 몸으로 태어나 저 안에 내 기록을 묻어 놓아서 날마다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흔적 찾기를 하고 있는 건, 저 산에 묻어놓은 타임캡슐 속 기록하나가 나비처럼 팔랑팔랑 찾아와 60대인 나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2001년 3월 28일 30대인 내가, 2024년 10월 17일 60대인 나를 찾아왔다.


2001년 3월 28일 수요일 기고했던 글에는 그때 당시, 내가 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30대 중반이었던 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나에게로 왔다. 지난 세월 흔적들을 찾아보면서 놀랐던 건 내가 필진으로 활동했던 일간지 등이 많았었다는 거였다.  대표적인 곳, 몇 군데 정도만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꽤 많은 매체에 발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자신감은 이제 실직자 여러분의 것


지난 19일 아침  실직의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해 갈까.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오전 9시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한 구직자들이 한분 두 분 모여들고 드디어 첫째 날 여는 마당을 시작하였다.  그분들의  모습은  거의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고  한발 물러나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는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첫째 날  여는 마당을  마치고 소감을 듣는 시간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에는 오기 싫어서  가급적이면 참석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 이 프로그램을 받아보니  선택받은 느낌이  들었다  내일이 기대된다"라는 소감을 시작으로 둘째  날 알리는 마당, 셋째 날 찾는 마당, 넷째 날 만나는 마당. 다섯째 날 다지는 마당  내내 그들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고, 그 확신은  마지막  날 종합 소감을 들으며 더욱 굳어졌다,


"이제 어떤 일을 해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동안의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면접 볼 때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막연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내내 온 열정을 바친 탓인 지 기력이 소진해 버렸지만 1회 성취프로그램 14명의 전사를 배출한 지금,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분들을 대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정신과  영혼의  풍요로움을 느낀다.

                                              (2001.3.19. 수요일, 시민의 소리 기고문)


2001년 3월 19일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첫 집단상담프로그램인 성취프로그램을 마치고 쓴 기고문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집단상담프로그램 진행자로 살았던 시간들이었다.  그 세월 안에는 매 순간을 같이 했던 동료들과 구직자들이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앞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직업상담직공무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있다.  어쩌면 그것을 쓰기 위해 30대인 내가 60대인 나를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내 직장생활 스토리를 알고  있는 지인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그 이야기는 언제 나와요."


"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게 궁금하다고요"


"언제쯤 풀어놓으실 거예요"라고.


그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남아 있다.  시나리오에서 보도자료, 사진들까지.  하지만 내 마음이 아직까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재생버튼을 누르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감정의 칼날들이 예리하고 날카롭게 남아 있어, 손끝만 스쳐도 무의식 속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30대인 내가, 60대인 나를 찾아온 이 흔적들은 앞으로 써나갈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첫 번째가 '출퇴근할 곳만 있다면,' 두 번째가 '헬리콥터부모와 캥거루세대,' 세 번째가 '엄마이자 워킹맘의 형량은' 이었다.


그 뒤를 이어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에는 제목을 통일해서 쓰기로 했다. '30대인 내가 60대인 나를 찾아왔다'로 오늘이 4번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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