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순간,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난 한강 소설 별로 좋아하지 않아. 특히 '소년이 온다'는 본인이 경험하지도 않았으면서 쓴 글이잖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말대로 한다면 세상에 모든 작가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 써야겠네."
"역사소설을 쓰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경험을 하고 나서 써야 되고, 자기가 경험한 거 외에는 어떤 글도 쓰면 안 되겠네"라는 말도 헤어지고 나서야 떠올랐다.
나에게는 그 말이 작은 충격이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지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내가 선호하는 장르나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작품을 다른 사람이 동일하게 좋아해 줄 수는 없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각자 나름대로 자신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책 읽어보니 좋더라, 한번 읽어봐"라고 권할 수는 있지만, "이건 꼭 읽어야 돼"라고 할 수도 없다.
나와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배척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취향이 다른 것이 아니라,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느냐였다.
그 사고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타당한 이유와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이유는 타당성도 설득력도 없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소설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 지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 사회, 또는 다양한 상상적 사건을 서술하는 문학이다.
소설은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배경에서 인물과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인간의 내면 심리, 사회적 문제, 관계 등을 탐구한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의 이야기지만, 현실의 문제나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여 독자에게 다양한 감정적, 지적 경험을 제공하는 서사다.
역사나 참혹한 사건을 기반으로 쓴 소설은 작가가 자료수집은 물론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를 비롯, 각종 기록을 찾아서 그것을 토대로 글을 써 내려가는 허구이되 허구가 아닌 글이다.
그래서, 역사나 과거에 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글을 쓸 때면 몇 달에서 몇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자료를 수집하는 기간과 그것을 읽고 자신만의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인고의 시간들이 농축되어 한 편의 소설로 독자들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본인이 체험해 보지 않고 쓴 글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그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그 여파가 남아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인연이 쉽게 끊어지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나랑 다르다는 것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잘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작은 섬이 있다.
그 섬은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안에 들어 있다.
그 섬에 작은 둥지를 내리며 살기엔 우린 너무 다르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애쓰는 시간에 나는 주방 식탁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걸 택했다.
우리 안에 있는 다름도(島)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한, 사람과 사이에 섬이 되어 있으리라.
비록 그럴지라도 그 섬에 밝은 빛 한 자락이 들어와 어둠을 밝혀주기를, 이 시간도 끊임없이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는 모든 작가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