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부처님 같아"
5년 전이었던가. 내 옆자리에 있었던 회사 선배가 나를 보더니 나를 부처님 같다고 했다. 눈썹이 진한 편이라 생김새가 닮았다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내 표정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부처님의 표정이란 온화하기 그지없는 표정인데 아무리 봐도 나는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 이 선배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려던 참에 그 선배는 내게 "어떻게 그렇게 표정 변화가 없어?"라고 말했다.
표정 변화가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학 시절 잠깐 활동했던 방송 동아리에서 내가 무려 여우 주연을 맡아 단편 드라마 비슷한 영상을 촬영할 때도 화를 내는 장면에서도 놀라는 장면에서도 같은 표정을 선보이며 발연기를 펼쳐 보는 사람도 민망할 정도의 결과물이 탄생한 적도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했다. 음식이 맛있어도, 선물을 받아도, 누군가를 위로할 때도 나의 표정은 한결같았고 그로 인해 오해를 받는 일도 잦았다. 아무리 지적을 받고 상대가 서운해해도 내 표정은 변화할 줄을 몰랐다. 선배가 말한 대로 마치 부처님처럼.
가끔은 부처 같은 내 표정이 편할 때도 있었다. 화가 나도 상대방이 싫어도 속으로만 온갖 상스러운 단어들이 오갈 뿐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보통의 나의 표정은 차가우면서도 관심 없어 보인다는 그러면서도 멍 때리는 것 같은 표정이었으니 나에게 쉽게 말을 걸어오는 이도 적었다. 내성적인 나에게 아주 효율적인 표정이었던 셈이다.
부처 같은 표정으로 10년 가까이 효율을 취해온 내게 시련이 닥친 건 최근의 일이다. 최근 예기치 못하게 부담스러운 책임감과 업무가 주어져 쩔쩔매야 하는 나날이 두세 달 정도 이어졌다. 그렇다고 나의 고충은 내 것일 뿐 알아주는 이는 없다고만 느껴졌다. 마치 회사에서 누가 나한테 맡겨놓은 빚을 자꾸 찾으러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제발 누가 나 힘든 것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나를 대했다. 아 내가 또 부처 표정이었나.
그래서 택한 방법은 털어놓기. 나는 부처님처럼 수양을 통해 속세를 떠나 출가한 것도 아니니 분출구가 필요했다. 상사와 면담을 요청했다. 요즘 내가 많이 지쳤다, 잡다한 업무가 너무 많고 업무를 완료하더라도 전혀 보람을 느낄 수가 없다는 등등 고충을 털어놨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상사도 내가 고생이 많다며 공감해 주고 내가 몰랐던 상사의 고충을 들려줬다. 나의 상사도 알 수 없었던 부분에서 고충이 있었고 내가 오해했던 부분이 풀렸다.
그리고 한 달 뒤, 해피엔딩일 줄 알았던 상황은 다시 도돌이표다. 또 속으로 욕하고 나는 부처님 표정이다. 부처님의 표정을 당장 집어던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연기학원을 다닐까. 연기자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내 감정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싶을 때는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