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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Apr 13. 2024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더 좋아

나만의 해우소 

             나만의 해우소 >             그루터기

                           



  어렸을 적 우리 집 화장실은 방과 별도로 지어진 건물에 있었다. 벽돌이 빠진 구멍이 있었고 그것이 곧 창문이었다. 그 창문으로 하늘이 보였다. 지금도 키가 작지만 그때는 더 작아서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동네 저 멀리서부터 큰언니의 이름을 마치 스피커를 댄 것처럼 불렀다

‘술을 드시고 오시구나 오늘밤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우린 이불을 뒤집어 썼다.

자는 척을 했다. 우리가 잠들기에 성공했을 때 아빠의 또 다른 표적은 당연히 엄마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실패한 날에는 아빠는 우리들을 앞에 앉혀 놓고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무한 반복하셨다. 

나는 나만의 해우소를 찾아 하늘의 대장께 ‘나는 왜 이 집에서 태어났을까요?’ 따지듯 물었다. 시원스런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한참을 마음속으로 울부짖다 보면 조금은 마음이 후련했다. 하늘에 계실 것 같은 막연한 신을 향해 대장께 하소연을 했다.


사춘기 시절 마음이 울적할 때도 벽돌 빠진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했고, 쏴아아 쏴아아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직접 보고 만질 수도 있었다. 나만의 해우소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를 배출할 뿐 아니라 내 마음에 소화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감정의 찌꺼기를 다 쏟아 버리는 곳이었다. 


 경제활동을 빨리 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던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은 생각지도 않았다. 중학교 단짝인 진희는 같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자고 졸라댔다.

나에게는 ‘선택권 없음’을 본능으로 알았고 대학보다 취업이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여상에 다닐 때 졸업한 선배들이 대학에 가겠다고 모교 방문하는 것을 자주 목격 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 친구들에게 “취업을 하겠다고 여상에 와서 왜 이제 대학을 가겠다고 하는 걸까?” 볼멘 소리를 했다. 


군산여상을 졸업하기 전에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소 연구소에 취업을 했다.

입사한지 3년쯤 되었을 때 나도 그 선배들처럼 대학 원서를 쓰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다. 

생각지도 않은 주경야독이 시작되었다. 근무 시간에 할 일을 재빠르게 해놓고선 나는 나만의 해우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미생물 이름들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렇게 나만의 해우소에서 20대 초 제2의 진로를 향해 열정을 다했다.

만약 그때 식품영양학이 아닌 문예창작과를 갔다면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내게로 왔다.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생명들임을 알기에 기뻤지만, 나에게 온전히 맡겨진 아기를 돌보는 일은 더욱더 놀랍고 버거웠다. 

첫째 아이는 손을 붙잡고 등에 업은 둘째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중이염이 낫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병원을 다녔다. 둘째 아이 중이염은 거의 6년 동안 따라다녔다.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여러 항생제를 먹였다. 그럼에도 자주 고막이 터져 고름이 귀에서 흘러나왔다. 고름이 나오기 전에 둘째 아이는 통증으로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커지는 만큼 나의 울음소리도 커져 갔다. 아이가 이렇게 아픈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같이 우는 것 밖에 없었다.

아이가 분유를 먹고 기분이 좋을 때쯤 나도 볼일을 봐야 했다.

변기에 앉자마자 아이가 울며불며 나를 찾았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아이한테로 가서 아이를 허벅지 위에 들어 올려 앉혔다. 나만의 해우소에서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재우는 건지 볼일을 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제야 내 속도 시원해졌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나를 만드신 분이 있다는 걸 안지는 중학생 시절부터다. 벽돌이 빠진 창문으로 찾던 그 대장의 실체를 가까이 대면하고 있었다. 

내가 낳고 키운 딸과 아들이 나의 좋은 점을 닮아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부모의 입장으로 얼마나 흐뭇하겠는가!

나도 대장을 닮아 가고 싶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누가 억지로 너를 오 리를 가게 하면 십 리를 동행하라는 그분의 마음을 닮고 싶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흉내도 내지 못할 그 대장의 뜻도 따라가고 싶다. 

닮고 싶고 따라가고 싶은 간절함이 더 할수록 마음이 너무너무 아렸다. 대장의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는 마른 검불과도 같은 자임을 날마다 깨달으며 나만의 해우소를 찾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업무 시작 전 대장의 마음이 담겨 있는 편지를 읽어가며 나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완벽히 닮아 갈 수 없는 것을 안다.

다 따라갈 수는 없어도 닮아 갈 존재가 명확히 내게 있다는 것이 기쁘다. 대장의 흉내라도 내다보면 언젠가는 대장 근처에라도 내가 서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만의 해우소에서 기대를 해본다.   



    

진화하는 해우소 

                                              그루터기



질풍노도의 시기 뚫려있는 창문으로

하늘을 향해 나의 존재를 누군가에게

묻곤 했던 나의 해우소



주경야독으로 

토끼 눈을 하며

기말고사를 준비했던 나의 해우소



울고 있던 아이를 안고

엄마만이 존재한 채

앉아 있었던 나의 해우소



틈틈이 

그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도움을 구했던 나의 해우소



미움도 

살인임을 알기에

마음의 전쟁터에서

싸우다 눈물짓던 

진화하는 나의 해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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