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에 대한 미움
결혼을 하고 처음 임신했을 때 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여자아이일지 남자아이일지 많이 궁금했다. 임신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배가 나오지 않아서 사놓은 임신복을 빨리 입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2.8kg의 딸을 어떻게 씻겨야 할지 몰라 좀처럼 자세가 나오지 않아 엄마가 씻기시는 모습을 따라 해 가며 겨우겨우 엄마가 되어갔다.
딸이 초등학생 일 때 연속 네 번 모든 과목 올백을 맞으면 닌텐도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닌텐도를 사줄 수밖에 없었다. 첫아이에 대한 나의 욕심이 시작된 것이 그때부터였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까지 학년마다 받아오던 상장들을 파일에 모으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급기야 딸은 중학교 시절 전교 4등까지 해버렸다. 딸은 시험공부를 많이 한 시험당일은 등교할 때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올라갈 때마다 자기의 심장 소리가 자기 귀에 들렸을 정도로 떨렸다고 나에게 말했다.
딸이 공부한 만큼 더 욕심이 생겼고 기대가 크니 더욱 긴장을 하며 시험을 치르는가 보다 생각하며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딸의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가 끝이 났다. 그동안 성실한 학생이었고 순종적인 딸이 갑자기 다니던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이유와 어떤 근거가 있을 때 받아들임이 가능한 나에게는 갑자기 알 수도 없이 몰아쳐 오는 파도와 천둥과 번개로 정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중3 겨울방학은 참으로 중요했다. 잘해왔고 잘하리라 믿었던 딸의 사춘기로 나는 당황했고 충격이었다. 말로만 듣던 질풍노도의 시간이 딸에게로 나에게로 덮쳐왔다.
어느새 고등학교 입학이 시작되었고 딸이 친한 친구들끼리 알아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서의 딸은 자기 방에 들어가 가족들에게 입을 열지 않았지만 친구들 속에 있는 딸은 아주 발랄한 여고생일 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친구들과의 왕성한 관계로 딸의 침대 머리맡 서랍에는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가 가득 차 가고 있었다. 그 편지가 쌓여 가는 만큼 내가 먹은 진통제의 흔적도 쌓여만 갔다. 딸은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친구들의 우정에 전부 다 쏟아냈다.
성경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바라는 것과 부모의 바람과는 어느 정도의 두께가 있는 것일까?
딸의 침묵과 예상치 못한 괘도 이탈로 어느새 자리 잡아 버린 미움을 발견하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의 껍데기를 보면서 미움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껍데기도 자기 본체에 대한 미움으로 괴로웠을까?
나의 오른쪽 고개가 방바닥에 거의 닿을 만큼 키티 변기에 앉아 있는 딸의 속 시원한 버림을 입가의 미소를 띠며 응원했던 나의 20대가 보였다.
사랑은 결국 믿고 바라되 참고 견디는 것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깨닫는 것으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사춘기를 맞은 딸과 처음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는 서툴렀고 참고 견디는 훈련을 해야 하는 사랑의 깊은 경험이 없는 나의 40대는 휘청거렸다.
나와 같은 과정을 이제 시작한 지인이 미움에 대한 미움으로 괴로움을 내게 쏟아낼 때 나는 정답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오만으로 가득 차 말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다 지나가. 엄마가 언제나 지지하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이가 느끼도록 해주면 돼. 옆에 있어주면 돼."
말은 참 잘한다.
인생은 정답이 없는 주관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하게 객관식을 만들어 들이밀며 껍데기들에게 안정적인 길을 제시하려고 책상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객관식이 너의 주관식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어느 정도 사춘기가 거의 떠나갔을 무렵.
“엄마는 엄마에게 집중했으면 좋겠어”
딸은 내게 말했다.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 부담되어 나에게 말했을 수도 있고, 엄마라는 정체성을 뺀 내 삶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워 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과 양육으로 아내, 며느리, 딸, 엄마. 그게 나였다. 엄마라는 자리를 빼 버리면 김현아는 누구였을까?
ISTJ인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실수하면 자책을 많이 한다. 약속을 어기는 걸 싫어하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직설적인 편이다. 내가 가진 성향이 있듯 딸이 가진 성향도 있을 것인데 서로 다른 성향으로 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겼으니 객관적이기 좋아하는 내 판단으로는 아주 잘못 간 것이다.
미운 마음은 나의 욕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지가 않았다.
자기 정체성이 찾아오면서 나에게로 다시 태어나는 딸이 머리로는 당연하고 대견하고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 생각이 내 생각인데 행동으로 나오지 않음이 문제였고 어려웠다.
미움에 대한 미움으로 괴로워 성품 좋으신 시어머님께 물었다.
“어머님도 자식 키우시면서 자식이 미울 때가 있으셨어요?”
“있지!! 말 안 들으니까 밉더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시어머님은 내게 말했다. 그 한마디가 어떤 사람의 백 마디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그때 나는 왜 그토록 딸로 인해 아파했을까?
대학생이 된 딸이 요즘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나 되게 잘 큰 거 같아요!”
나도 한 사람의 인격으로 잘 커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