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와서 일하는 남편,그 아내의 기쁨과 슬픔)
7~8월은 내 짝꿍 H에게 힘겨운 시간이다. 땀이 많은 데다가 몸을 움직여 일하는 업종이라 더욱 그렇다. 여름이 비수기일 때도 많다. 올해는 휴가 대신 주방이나 가구를 바꾸자고 계획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7월 전에 8월 스케줄이 다 찼다.
우리는 보통 7월 말이나 8월 초에 휴가를 떠난다. 극성수기다. 숙박비가 엄청 비싸도 매년 이 시기에 간다. 거래처들과 고객들이 주로 바다로 향할 때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내 짝꿍 H가 주로 장거리 운전을 한다. 최대한 피로를 줄여야 한다. 우리는 자가용으로 2시간 이내 장소를 알아봤다. 폭염으로 관광은 엄두도 못 낼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다. 바다전망이 있고 실내 수영장이 필요하다. 물놀이와 보드게임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려고 계획했다. 5월쯤 태안에 있는 S 풀빌라를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예약 했던 것을 휴가 임박 전까지 잊고 지냈다. 내 짝꿍 H에게 온 문자를 보고 알았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2인 기준이란다. 체크인 시 2인 추가 요금과 우리 구름이까지 16만 원을 더 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숙박비를 지불했다. 침대가 3개나 있는데 2인 기준 방이라니! 나는 괴물이 됐다.
‘쉼’을 얻기 위해 떠나는 짧은 여행을 망치면 안 된다. 나는 내 안의 괴물을 달래고 달랬다.
내 짝꿍 H는 여행 하루 전에 말했다.
“ 태안 가는 길에 서산 좀 잠깐 들러야 해요. 싱크대 수도 교체 때문에, 오래 안 걸리니까 한 번만 이해해 줘.”
휴가 첫날. 우린 서산으로 먼저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전화가 왔다.
“사장님, 코드 선 안 빼놓으셨어요?”
“아, 언제까지 해놔야 할까요? 아! 네 오늘까지 해놓죠, 뭐.”
차를 돌려 공장으로 가서 공구를 챙겼다. 서산에서 갈 곳이 하나가 더 늘었다. 화를 낼 수도 없다. 첫 번째 현장은 아들과 함께 올라갔다. 수도 교체 작업이 끝나고 40분쯤 지나 차 문을 열며 말했다.
“ 에이 아들한테 ‘김 주임!’ 하면서 역할극 좀 하려고 했더니 소비자가 ‘아들이죠?’ 대번에 알아봤어!” 내 짝꿍 H는 아쉽다며 활짝 웃었다.
두 번째 현장까지 끝내고 태안에 미리 가기로 한 맛집에 도착하니 1시가 다 됐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수산물 시장과 마트에 들러 가리비, 소라, 맛조개를 샀다. 물론 저녁은 고기 파티다. 해물은 사이드일 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숙소에 도착했다. 젊은 부부가 주차장까지 나와 우리 캐리어를 엘리베이터까지 옮겨줬다. 1층 현관에는 커피머신과 커피믹스 외에 각종 차가 세팅되어 있다. 한쪽에는 탈수기가 놓여 있다. 2층에 내려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었다. 이미 에어컨이 시원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바다전망이(비록 한쪽창이긴 하지만) 거실을 통해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오른쪽을 보니 실내 수영장이 있다. 딸과 아들이 침대 하나씩을 차지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아했다. 주방 쪽으로 가니 싱크대 앞에 식탁이 있다. 냉장고를 거쳐 가니 고기 구워 먹을 수 있는 전기 그릴이 있는 보조 주방과 식탁이 나왔다. 대충 집구경을 하고 우린 수영장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둘째 날 7시 30분에 알람을 맞췄다. 내 짝꿍 H는 내가 깨우기도 전에 일어났다. 베개에 머리 대면 바로 잠들어 버리는 ‘3초 맨’ 이다. 내가 알람을 해놓고 새벽예배에 가도 깨지 않는 사람이다. 사장은 휴가이지만 세트가 꽤 큰 현장이 있는 날이다.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내 짝꿍 H가 여러 곳 통화 하면서 우리는 이미 잠이 다 깼다.
아이들은 10시까지 자기로 했다. 우리는 바다 산책하러 나가기로 했다. 단둘이 가고 싶었지만 구름이가 내 새끼들을 깨울 것 같아 데리고 출발했다. 바닷가라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산책하기 좋았다.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즈음에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냉장고 장 문의 좀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문자로 어떻게 짰으면 하는지 보내드렸어요. 빌트인 냉장고라 기존장을 헐고 다시 할 수 있는지 해서요.”
“어디 아파트인가요? 30평대인가요? 냉장고 하나 김치냉장고 하나 들어가야 하는 거죠?”
“네. 들어올 냉장고가 빌트인이라 맞춰서 넣고 싶어서요. 사이즈가 나올지 몰라서요.”
나와 구름이가 한참을 걷고 내 짝꿍 H에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 상담은 계속됐다. 몸은 휴가 장소에 있지만 사장으로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산책을 한 것인지 상담을 한 것인지 모른 채 우리는 숙소에 들어왔다. 내 짝꿍 H는 바다산책 하면서 구름이와 두세 번 달음박질했는데 무릎이 갑자기 아프다고 연신 주무르고 있다. 숨은 한숨을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사장님 우리 R 아파트 가셨던데 시공 날짜 언제였죠?”
“13일이면 너무 좋겠는데요.”
내 짝꿍 H가 원하는 날짜를 말했다.
“우리 14일이 마감인데. 하하하 13일에 도배 잡혀있어요.”
“음~그럼 토요일에 하면 안 되나요? 10일요!.”
“많이 시끄럽나?”
“임팩트 드릴 소리하고 냉장고 벽장 걸 때 앙카 박는 소리 좀 날 거예요.”
“모르겠다. 이제 인테리어 시작하는 아파트라 성향을 잘 모르겠어요. M 아파트는 토요일 일정 잡아도 괜찮다고 하는데 여긴 어쩌려나.”
“큰 소리 나는 건 30분 정도 인데. 집주인한테 양해 좀 구하면 안 될까요?”
내가 간단한 아침을 차리는 동안 내 짝꿍 H는 인테리어 사장님과 긴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또 사업과 관련된 벨 소리가 이어졌다.
거실 창밖 바다전망을 바라보니 모래사장에서 조개류를 캐는 사람들이 보였다. 옆 건물 오른쪽 펜션 마당에는 바다 수영을 하려는 건지 옷차림을 갖추고 대식구가 모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신축 펜션 공사를 하고 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이 날씨에 담벼락 벽돌을 쌓고 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휴가를 즐기는 이들과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꺼내 내 짝꿍 H에게 건넸다. 갑자기 무릎의 통증으로 소파에 기대어 수건을 감싸 냉찜질하는 내 짝꿍 H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점심은 어제 고기구이를 하고 남은 것으로 버섯과 양파를 듬뿍 넣고 볶았다. 한참 전에 편의점에서 사놨던 8인용짜리 대형 사발면을 뜯었다. 냄비 한곳에는 조개류를 가득 넣고 해물 라면을 끓였다. 다른 하나는 해물 라면 싫다고 한 딸을 위해 파만 넣고 대령했다. 딸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다. 위아래 입술 포진으로 피곤함의 결정체를 본 나는 동생과 함께 식탁만 치우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물놀이를 마음껏 아니 실컷 즐겨야 한다는 특명을 줬다. 설거지하며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남매의 웃음소리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식탁을 보니 내 짝꿍 H는 A4용지와 수첩을 펼쳐 놓고 싱크대와 가구 등의 도면을 그리고 있었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캐리어에서 책 두 권을 가지고 앉았다. 중간 중간 헝클어진 머리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신랑을 봤다. 나는 모자를 씌워주고 사진을 찍었다. 26살 어린 나이에 나와 결혼했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을 부양하느라 애쓴 흔적들이 얼굴에서, 거친 손에서 느껴진다. 올라오는 감정들을 꾹꾹 누른 채 책에 나를 맡겼다.
휴가 전에 딸이 재촉해서 완전체로 인생네컷 사진을 찍었다. 집에 와서 사진에 담긴 모습을 보며 딸이 말했다.
“아빠만 얼굴이 까매요. 우리는 다 하얀데.”
울보 집사 별명을 가진 아빠를 닮아 딸은 말끝을 흐리며 울컥 눈물을 보였다. 나도 울컥.
눈물 없는 아들은 피식 웃는다.
“다 그러고 살아.”
얼굴 탄 게 뭐 대수냐는 듯 내 짝꿍 H는 눈가에 주름 가득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번 여름휴가 목적인 ‘쉼’은 달성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