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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이어지는 이야기

마르살라 마르살라 

채색된 시칠리아 옛수레


시칠리아를 여행했다면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는가. 시칠리아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프랑스 작가 모파상은 그 곳의 짐수레에 첫인상이 박혔다. 그는 1890년 출간된 산문집 <방랑생활>에서 “노란 바퀴들 위에 작은 사각형 박스가 올려진 이 마차는 소박하면서도 기묘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중략> 알록달록 칠해진 이 마차들은 낯선 길을 지나가면서 시선을 끌고, 흥미를 유발시키면서 우리가 어떻게든 풀어봐야 하는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 움직인다“고 기록했다. 


 먼저 마르살라로 가보자. 마르살라는 로마 제국시절 서부 시칠리아의 중심이었다. 더 먼옛날 마르살라는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매서운 공격을 끈덕지게 지켜낸 카르타고의 강력한 해군기지였다. 카르타고에 본부를 둔 페니키아인들은 마르살라를 비롯하여 지중해 주변 곳곳에 포도밭을 조성했다. 마침내 포에니 전쟁을 승리한 로마는 마르살라를 함락하여 카르타고 세력을 몰아낸 다음, 북아프리카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와인애호가들에게 마르살라는 포트, 셰리, 마데이라와 같은 주정강화 와인이다. 고소한 풍미와 찐득한 소스를 만들 때 주로 쓰이는 싸구려 독한 와인에서부터 수십년간 숙성시킨 깊고 풍부한 고급 와인에 이르기까지 마르살라의 모습은 다채롭다. 마르살라는 해풍과 오크통 숙성으로 인해 짭쪼름하면서 고소한 맛이 나며, 잔당을 얼마나 남기느냐에 따라 드라이, 세미드라이, 스위트 등으로 구분된다. 마르살라는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와인 마르살라는 리버풀 출신 해상무역업자 존 우드하우스(John Woodhouse)에 의해 1773년에 시작되었다는게 정설이다. 폭풍우를 만나 예정에도 없던 마르살라 항구에 불시착한 우드하우스가 어느 날 저녁에 현지 주점에 들렀다. 거기서 그는 동네 와인의 품질에 매료되어 자신의 선박에 상품으로 적재했다. 그 와인은 지역인들에 의해 비노 페르페투오(Vino Perpetuo, 영원한 와인)라 불렸다. 큰 오크통에서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숙성시켜 만들었다. 산화작용과 수분 증발에 의해 점점 맛과 향기가 농축되고 도수가 강해지는 매력적인 와인이었으니, 이미 포트나 셰리를 경험한 우드하우스가 반할만했다. 더구나 생산자에게 직접 구매한터라 가격이 쌌다. 

우드하우스는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직감했다. 그는 먼 뱃길에 와인이 상할까 염려해서 브랜디를 주입하였고, 예상대로 영국인들은 그 맛에 반해 버렸다. 마르살라는 항구에 하역하자마자 순식간에 완판되었다. 넬슨 제독도 마르살라를 젠틀멘 모임에 아주 적합하다며 그 맛을 높이 평했고, 200개의 파이프 (1파이프는 550리터들이 나무통)를 구입하여 해군 장병들과 나눠 마셨다. 1800년 왼손잡이 넬슨 제독이 존 우드하우스의 아들과 서명한 매매 문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마르살라의 최초 양조장 우드하우스가 설립되었고, 1805년에는 미국 대통령 제퍼슨도 구매했다. 

마르살라 대박 스토리는 삽시간에 영국에 퍼졌다. 그러자 한 젊은이가 호기롭게 배를 탔다. 그가 바로 벤자민 잉햄(Benjamin Ingham)이다. 

그는 22세의 나이로 가업을 위해 시칠리아 사무소장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1806년 우드하우스 옆에 보란듯이 양조장을 건설하여 경쟁에 참여했다. 탁월한 사업가 기질을 발휘하여 그는 유럽과 미국에 마르살라를 수출하여 큰 부를 쌓았다. 그는 커가는 사업을 뒷받침해 줄 인물을 찾기 위해 영국 본가에 편지를 써서 조카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는데, 불운하게도 무려 조카 셋이 근무하다가 운명을 달리 했다. 오랫동안 잉햄을 보좌한 조카중에서 조셉 휘태커(Joshep Whitaker)가 후계자가 되었고, 그의 이름도 외삼촌과 함께 오늘날까지 시칠리아 명사록에 남아 있다. 

조셉 휘태커는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페니키아의 문화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는 모치아섬을 구입하여 그 곳을 휘태커 박물관으로 변모시켰다. 이 곳의 소장품 가운데 최고의 보물은 다름아닌 ‘일 조바네 (젊음)’다. 대리석으로 빚은 전신상이 이토록 매혹적이고 관능적일 수 없다. 이 세밀하고 섬세하게 빚어진, 거기에다 보존 상태마저 탁월한 이 조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륙할만하다. 


영국인들의 독무대인듯 했던 마르살라에 이탈리아 현지 기업가들도 가세했다. 증기선 제조업자 빈첸조 플로리오(Vincenzo Florio)는 1833년 우드하우스 옆에 자신의 양조장 플로리오(www.duca.it)를 설립하였고, 후일에 우드하우스의 양조 시설까지 인수하여 오늘날 마르살라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다. 

플로리오 양조장은 해변 도로 맞은편에 있는데, 양조장 코 앞이 모래 사장이다. 한블록 전체가 다 양조장일 정도로 넓다. 거대한 오크통 숙성실(셀러)이 네 개나 있는데, 긴 것은 이백미터에 달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면 삼천개가 넘는 오크통들이 모두 바다를 향해 4열 종대로 줄서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플로리오의 특징은 규모에 있는 게 아니라, 셀러의 매커니즘에 달려 있다. 

플로리오의 책임자 로베르토 마니지(Roberto Magnisi)는 “이 지역은 기온이 높고, 습도가 낮으며 바람이 많아 서핑에 적합하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이런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탁월한 와인 마르살라를 유산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의 셀러 역시 테루아의 일부”라고 했다. 카톨릭 국가 이탈리아 국민답게 그는 네개의 셀러를 성당의 신도석으로 비유하며 말을 이어갔다. 

“셀러 바닥에는 ‘투포’라 불리는 수분 투과가 좋은 응회암 가루가 깔려 있다. 바다가 가까운 곳은 바닥에 수분이 많고,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건조해진다. 바닥 흙을 만져보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가까운 곳은 실내 온도 변화가 덜하며, 멀어질수록 온도가 쉽게 변한다. 그러니 바다 가까운 곳에 있는 오크통들은 높은 습도와 더딘 온도 변화에 힘입어 와인의 변화가 적고 앤젤스 쉐어 (알코올 증발) 유실도 적다. 멀어질수록 습도가 낮고 온도 변화가 커 산화가 더 촉진된다. 물론 증발도 많다. 그 결과 와인 맛에 고소함이 더해지며 색도 짙어진다. 오랜 숙성을 통해 고소하고 집중된 복합적인 맛을 필요로 하면 먼 곳에 오크통을 쌓고,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쌓는다.”

플로리오의 마르살라는 내추럴 와인 양조법과 아주 유사하다. 자연효모로 발효하며, 필터링이나 파이닝 작업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양조장에서는 에어컨이나 기계식 온도장치가 전혀 없다. 로베르토가 설명한 '셀러 테루아’란 말에 수긍이 간다. 마르살라를 아직도 저급한 요리용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르살라는 그야말로 바다와 시간이 빚어내는 포도의 예술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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