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재 이진주 May 22. 2024

살아왔음을, 살아 있음을 감사하자

시들지 않는 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순다섯, 모든 것이 변했지만  나만 모른척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일부러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

어느 시인이 써 놓았다. "꽃은 밤하늘의 별이 잠들어 있는 꿈"이라고.

한때 꽃처럼 행복한 날들에서는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온통 꽃밭이었다.

수많은 꽃 중에서 나는 유독 맨드라미를 좋아했다. 벌과 나비가 날아오지는 않지만 그 자태는 붉은빛의 여왕이었다. 뒷간 습한 곳에서 닭의 벼슬을 하고 꼿꼿이 피어 작은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 꽃이었기에 시인들에게 시상을 전해주기도 했다. 맨드라미 꽃은 닭의 벼슬처럼 생겨서 입신양명을 상징하기도 했다고 한다.

옛 시인 이규보의 "영측중계관화"라는 시에서 "맨드라미"를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그려져 있는 것만 보아도 그냥 보잘것없는 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은봉 시인은 맨드라미를 어머니에 비유하여 "빨래하는 맨드라미"라는 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듯 많은 시인들의 시의 소재로 등장했던 맨드라미는 꿈꾸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추억과 그리움보다

꽃지는 시절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싶다.

꽃피던 시절이 아름다웠다면 꽃지는 시절을 제대로 보내면서 일생을 마무리한다면 더욱 아름답지 않겠는가?

점점 바래져 가는 인생의 황혼역에서 맨드라미 꽃잎에 빠져보거나 꽃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서 있으니 마음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듯하다.

맨드라미 꽃말이  " 열정" 또는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고 하니 갑자기 순수했던 젊은 날 맹세가 떠오른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꽃잎이 닭 벼슬모양을 하고 붉거나 노란 수술을 관으로 썼으니 사랑하는 님의 머리에 왕관처럼 올려두고 좋아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웃어보지 못했던 꽃이었다면 나의 삶에서 가면 속에 숨겨둔 쓸쓸 함과 외로움은 나만의 향기 없는 응어리 같은 것이리라.

저물어 가는 인생을 다시 꽃 피워 보겠다는 고민은 이랑고랑을 타고 넘는 못내 삼키는 서글픔이기도 했다.

날이 밝으며 또 다른 날을 살아온 경험에 기댈 뿐 별다른 방법이 뾰족이 없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손에 색을 묻히고 마음 캘리를 그려보았다.

거기에서 보이지 않았던 내 미래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다는 것은 이제껏 살아있음을 감각으로 느끼게 했고 붓끝에 묻어나는 나무와 풀잎, 꽃이 피어나는 과정에서 마음문이 열리는 듯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고단한 삶 속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사랑스러운 시선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그것은 최고의 위로였고 행복이었다.

숨겨진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지금 주신 선물일 것이라 믿는다.

색감과 구도를 알려 주신 것은 내 삶에 어두움을 밝혀 주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새로운 삶의 여정을 그려보라고 일곱 가지 색깔과 충분한 여백을 주셨으리라.


나는 오늘도 수평선이 보이는 바닷가 바위 위에 몸을 쭈그려 앉았다.

수평선 하늘가에 낮은 구름이 수평으로 펼쳐져 일렁이듯 작은 파도를 달래고 있다.

검푸른 바다 저 깊은 곳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큰 고래가 상어들과 어우러져 자유롭게 유영을 하고 있을까?

아님 작은 새우와 자리돔들이 온 동네 요란하게 운동회를 하고 있을까?

바다의 수많은 물고기와 생물체들은 각자 무슨 꿈을 꾸면서 살고 있을까?

그들도 육지에 사는 우리들처럼 꿈을 꾸고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앞면만 보면 뒷면을 볼 수 없고, 겉만 보면 속을 볼 수 없고, 재미있으면 슬픔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른 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통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 친구의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열흘이 지난 지금도 깨어나지 못하고 혼수상태라고 한다.

전화기 너머로 우울한 표정이 읽히는 목소리가 가슴을 멍하게 한다.

그들 부부는 젊은 시절에 만나 맨드라미꽃을 이야기하며 그동안 잘 살아왔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조금은 무뚝뚝한 듯했지만 마음은 늘 넉넉하고 내어줄 줄 알고 사랑할 줄도 아는 그들 이였다.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남의 시선도 느낄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친구 보다도 그의 아내가 참 잘하고 사는 이라 알고 있다.

열심히 살아가던 그녀는 학교 급식일을 했다고 했다. 월요일 그녀는 다른 날과 같이 출근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일에 바쁘게 움직였다.

특별한 충격도 없었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상항에 주변사람들이 응급조치를 하고 119로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조금은 먼 거리였으나 다행히도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말해주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열흘이  지난 지금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맨드라미 꽃이 시들어 가려고 한다.

오늘 아침에는 몇 년 동안이나 소식을 끊다시피 하던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웬일이래?" "어쩐 일이래?" 무슨 말을 먼저 꺼내놓아야 할지 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많이 아팠다고 했다..

원인을 잘 모르는 병명을 모르는 병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제 가슴에 바람이 들어서 힘들었어요. 바람이 들어왔어요" 언 듯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심장이 조여 오고 숨쉬기가 어려웠다는 예기도 덧붙였다. 어쩌다 그녀에게도 이런 일이..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신뢰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은 참 특별했다.

 늘 존중과 배려가 몸에 밴 싸가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회사를 그만두고 소식을 끊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근황이 궁금했으나 알 방법이 없었다.

오랜만에 통화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금도 다 낫지 않았다고 했다. 아프지만 살아 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꽃은 또 그렇게 시들지 않고 견디고 있다.

제발 시들지 않기를...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시련이 있다면 잠시 쉬었다 다시 일어서라고 기도하게 된다.

쉬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힘들거든 쉬어보라고, 일삼아 쉬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바람은 늘 향기를 실어온다. 지치고 분주하여 땀을 흘릴 때에도 바람은 치유와 희망을 가져다준다.


너나 나나 모두가 잘 살아왔기에 잘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간혹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한 삶을 이겨낼 방향에 대해  통찰하여 볼 필요가 있다.

모진 세월이라는 말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 어울리는 말이다.

그분들은 땅에서 먹을 것을 구했고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도 했기 때문이다.

봄날에 들꽃이 그들을 위로했겠는가?

뜨거운 여름 붉은 장미꽃이 사랑을 느끼게 했겠는가?

늦가을 노란 들국화 향은 치마폭에 사치스러운 그림이었을 텐데..

사계절 중 가장 추웠던 설설한 한설움은 인생살이 대부분이었으리라.

나이 들어가면서 몸도 늙어 가니 길 가던 당나귀 푸르르 코웃음을 하면 똥냄새도 향기롭던 우리네 삶이 아니었을까?

별처럼 눈부신 우리의 젊은 날이 있었다.

봄 향기에 동네 어귀에서 그리움으로 기다리던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이 있었다.

이 지구상에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그 연한이 다 할 때까지 아파하고 시들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평선 저 끝에서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열정을 가득 안고 시들지 않는 사랑으로 채워보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름답지 않더라도, 귀히 여겨지지 않더라도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전 01화 감사의 첫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