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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와 Mar 13. 2024

매거진 인턴 기자 면접 탈락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는 마음

*해당 채용 전형과 관련한 질문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죄송합니다.


면접에서 탈락했다.


탈락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금번의 과정에서 숨어 있던 내 간절함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내일 발표가 날 줄 알았지만 늦은 오후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채용 홈페이지에서 결과를 확인하라는 문자를 받고 심장이 귓불을 흔들 만큼 뛰어댔다. 떨리는 손으로 이력서 확인을 누르고 등장한 글의 톤을 훑어보니 아무래도 부정적인 내용인 듯했다. 탈락이라는 걸 알자마자 심박수가 순식간에 내려가고 힘이 풀렸다.


함께 고민해 온 내 친구, 책상


집 밖을 나오니 약간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비가 오고 있는데도 휴대폰의 날씨 예보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늘을 보니 가산동에만 먹구름이 있었던 것인지 늦은 오후에 하늘의 옆구리로 처진 해는 구름을 피해서 햇빛을 사이드킥으로 내고 있었다. 노란색 햇빛이 동네에 내려와 있으면서도 하늘에는 비가 오는 반골적인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치며 다이소로 갔다.


면접에 떨어진 것과는 별개로 오늘은 화장실을 청소할 도구를 사러 가기로 어제부터 마음을 먹었었다. 마스크와 비니를 쓰고 얼굴을 가렸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토익이 없던 게 문제였을까. 낮은 학점이 문제였을까. 과거와는 달리 말하기에 자신감이 떨어진 내 면접이 문제였을까? 그저 내 역량이 부족했을 것이다. 나보다 더 낫고 간절한 누군가가 있었겠지. 나는 뻗어가는 열정의 관성이 갑자기 멈춘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져 바닥에 누워 가쁘게 숨을 내쉬는 마라토너가 되어 있었다. 여성동아 기자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정을 맛본 한 달을 회상했다. 학교보다는 외부 활동에 집중하면서 현장을 누비며 카메라를 만지고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쓰며 꿈을 찾았던 과거의 경력들이 비로소 여기에서 마침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 볼 수도 있었다. 채용이 아직 되지 않았는데도 꼭 이미 직원이 된 것처럼, 어떤 콘텐츠를 통해 여성동아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창작에 대한 자신감을 오랜만에 가지며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펄떡임을 느끼기도 했다.


메모장

다이소에 도착해서 메모장에 써두었던 사야 할 물건들을 확인하고 장바구니를 들었다. 그리고는 길 잃은 아이처럼 허둥대며 내가 무엇을 사야 하는지를 갑자기 잊은 채로 다이소를 방황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내 동공은 앞이 아니라 내 안으로 향해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보는지도 잘 모르겠고 자꾸만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내가 간절하다고 해서, 그 크기가 어느 정도라고 한들 지금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청소솔을 샀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실천을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새로운 계획을 그리면 될까. 새하얀 다이소에서는 빛에 묻히는 까만 비니와 까만 마스크, 칙칙한 나의 옷이 오히려 그림자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절뚝거리는 사람처럼 사야 할 것을 겨우 사고 빅파이도 샀다. 단 걸 먹고 싶었다.


마리오 아웃렛 10층 다이소의 바로 위층에는 오락실이 있다. 어느 인형 뽑기의 반출구 끄트머리에 조그만 쿠로미 키링이 겨우 걸쳐있었다. 천 원을 넣고 집게질을 왔다 갔다 해보니 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 원을 출금해서 여러 번 집게를 내리는 버튼을 눌러댔다. 될 것 같은데도 되지가 않았다. 뽑으려는 쿠로미 인형의 가격 보다 돈을 더 쓰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열심히 조이스틱을 세밀하게 탁탁 움직여 가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이 노력이면 되지 않을까. 투명한 인형 뽑기 유리창 건너편에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의자에 앉아 멀리서 사탕을 먹고 있었다. 뽑으면 저 친구에게 줘야겠다. 하지만 집게는 인형을 기계 위까지 올렸다가 갑자기 힘을 풀어 떨구길 반복했고 끄트머리에 걸친 쿠로미는 컴퓨터로 따지자면 겨우 1픽셀 차이로 묘기를 부리듯 반출구의 난간에 걸터있었다. 왜 안 되지, 보통 이 정도로 하면 되지 않나? 이러다가 한 번은 집게가 힘을 강하게 줘서 뽑히게 해주지 않나, 어쩜 이럴 수 있지 하면서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릎으로 한 번 기계를 치면 출구로 떨어질 듯 한 저 손바닥 보다 작은 쿠로미 인형 하나 뽑는 것도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가끔씩 나타나는 암울한 시기에 글을 쓰기로 하면 그 다짐 자체로도 마음이 나아졌던 과거가 문득 생각났다. 그런 방법으로 글에게 빚을 지어 왔던 과거가 있다. 나는 이기적이게도 다시 그 힘을 빌려서 다음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고서 오락실을 또 한 바퀴 돌았다. 펌프가 깊은 취미인 것 같은 어떤 사람은 땀을 흠뻑 흘린 채로 게임기 앞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자주 그 게임을 했는지 옷차림마저 그 게임을 위해 준비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집에 가서 글을 써야겠다고 굳게 다시 다짐했다. 그래도 글은 나에게 어떤 탓도, 죄책감도 심어주지 않고 보듬어 준다는 사실이 다시 숨을 쉬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락실에서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갔다.


비가 그친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이라 막 퇴근을 한 사람들과 자동차들 모두가 서울 방향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나는 집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사람들을 가로질렀다. 바닥은 여전히 젖어서 자동차 조명과 가로등 빛을 비추었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헤드폰을 꼈는데도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소리가 내 주변을 스쳐갔다.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내 꿈의 기회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를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이끌까.


집에 돌아와 사 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주문한 선반도 도착해서 조립하고 보니 나사 하나가 부족했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업체에 전화할 수도 없었지만 오븐을 올리고 보니 무게 때문에 부족한 나사쯤은 버틸 수 있었다. 책상에는 동아일보에서 면접비로 받은 3만 원이 전리품처럼 놓여 있었다. 가방에 넣어 둔 책 <쓰기의 말들>을 꺼내서 책장에 다시 꽂았다. 청소를 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화장실에 찝찝하게 남아 있던 조그만 얼룩들도 청소 용품으로 모두 지워버렸고 합격하길 간절하게 바랐던 그 마음의 공간도 청소했다. 그렇게 다시 어딘가를 향해 찾아올 뚱뚱한 열정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해 갔다.


'뚜렷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일기를 적을 것.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그 뉘앙스며 사소한 사실들을 놓치지 말 것. 특히 그것들을 분류할 것. 내가 이 테이블, 저 거리, 저 사람들, 나의 담뱃갑을 어떻게 보는가를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변한 것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범위와 성질을 정확하게 결정지을 필요가 있다.'

<구토>에서 쓴 사르트르의 말처럼 이제 다시 내 주변을 바라보며 사소하게 변하는 것들을 포착하고 정리한 뒤 그다음을 향해 또다시 한 발자국 걸어야한다.


자기소개서, 면접을 준비하는 스터디나 강의를 듣는 쪽이 좋을까? 이번으로 입사 지원 탈락의 숫자는 어느 수준 이상으로 늘었다. 그중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이번 지원은 탈락하게 되었을 때 맞이할 파도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발표 전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쓴 글을 탈락이라는 결과와 함께 다시 보는 일은 분명히 감정적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살아야 하고, 빈지노의 가사에서 말하듯 '삶이란 게 좀 지겹긴 해도 좋은 건가 봐' 하는 마음을 새롭게 굳히고 싶다. 이번은 아쉽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나에게 값진 고민의 시간을 준 동아일보 라이프지 심사위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다시 전하고 싶다. 수많은 이력서 중의 하나였겠지만 나에게는 삶의 방향에 전환을 줄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기자로 일할 수 있기를 꿈꿔 보며 정말로 행복했다.




더 큰 애정을 가지고 노력할 또 다른 곳은 반드시 나를 찾아온다고 믿는다.

조만간 마음이 정리되고 나면 다시 언론사, 잡지사 채용 사이트에서 에디터, 기자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차분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찾아보아야겠다.세상이 나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도 분명히 해가 뜨고 봄이 오는 게 자연의 섭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기회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온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언젠간 꼭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들을 인정받고 단단한 길을 닦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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