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늘이 무너진 날' (사일 장ㆍ탈상제+불효한 상상)
어머니와 함께하는 마지막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향을 이어 피고 괜스레 슬픔이 밀려올 때 밖으로 나갔다.
장례식장 현관 화장실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바깥 조명도 밝은 편이다.
어스름한 새벽 찬공기에 진눈깨비가 흩날려 몸이 떨리고 바닥이 몹시 미끄러워 의식하여 바닥을
천천히 걷지 않으면 슬리퍼ㆍ구두 넘어질 뻔했다.
염화칼슘 대신 소금을 잔뜩 뿌려주셔서 좀 나아졌다.
하늘에서 어머니가 남겨진 가족들 걱정에 흘리는
눈물 같아 마음이 더 무거웠다.
더 이상 조문객은 받지 않고 마지막 어머니 아침식사를
올리고 식사하고 나서는 가져온 짐들과 구입한 물품 거의모두를 스타리아 승합차에 실어두었다.
(빌린 버스 앞 좌석에 작은 페트병 물들 만 실어둠)
'영결식 제사'를 올리며 같이 어머니 마지막을 함께하려
모인 외갓집 식구들이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와
빈 공간을 흐느낌으로 채우고 상주는 흰 수의장갑을
끼고 어머니 영정사진과 위패를 받아 앞을 서고
삼촌 이모부들이 어머니관을 들어주셨다.
'울진 군립 추모원 화장장'에서 몸이 불태워진 다는 게
무서우셨는지 겉을 씌운 천을 비바람에 자꾸 벗기려 하셨다.
먼저 한평생을 세 남자들과 고생하며 살아온 풀천지
새집과 2층 사랑방 사방댐 공사하는 곳을 돌았다.
집안팎이 물건들로 어수선하여 답답하다.
"집정리 좀 하라니까"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산을 잔뜩 실었다. 앞유리에 와이퍼가 돌아가고 살얼음 바닥을 미끄러지지 않게 천천히 가기에 어머니와 좀 더 있을 수 있었다.
'집뒷산에 어머니 유골을 뿌려드려야 하는데 어떡하지'란 걱정은 울진화장터에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환하고 따뜻해져 사라졌다.
화장을 기다리며 아버지는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을 도와주러 찾아오신 두 친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바깥 산책길을 외갓집 식구들과 거닐었다.
이모부를 더 젊은 나이인 50대 기계사고로 보낸 숙자이모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친한 친구가 그래도 애들한테는 아버지 보다 어머니 남는 게 더 났다고 날 위로하대 더 살뜰하게 보듬어 주는 게 있다는 거지."
앞으로 농가생활을 떠올리며 미래를 그려보았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분이 계신다면?
동생과 나에게 더 좋을 것 같은 걸 상상해 보았다.
결혼을 아직도 못한 노총각 둘에 아버지 세 남자 대신
어머니께서 계신다면 생존에 더 유리할 것 같다는
'불효한 생각'...
풀천지농가생활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말씀만 해주셔도 할 수가 있었다.
어느새 머릿속에는 영정사진이 아버지로
바뀌고 내 반대편자리에 앉아계신 귀가 잘 안 들리시고
깜박깜박해도 아직 정정하신 아버지는 어머니로 바뀌었다.
'결혼할 여자가 생겨 들어온다 가정하면
같은 여자가 있으니 서로 챙기며 마음 나누기 더 좋겠지. 점심ㆍ저녁준비 나 농산물 가공도 걱정이
없고 하고 싶은 일 하는데에 있어 어머니는 너그러우시니 개인시간도 낼 수 있겠다.
집안팎 물건들 어지러워 어머니 살아생전 함께 아버지 몰래 놔두면 나중에 쓸 거라고 놔두고는 처박아둔 것들을 버리곤 했는데 집 주변 정리도 빠르게 될 테고 농사규모와 가짓수 확 줄여 풀천지식구들이 좀 편하고
돈 벌기 유리한 쪽으로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여자를 만날 방법 다양한 시도/그림 그리는 시간확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의 미래는 어머니 계실 때 더 뚜렷해 보였다.
유골함을 받아 들고 마지막으로 집 주변을 한번 더 돌았다. 다용도실 총각무ㆍ동치미ㆍ파김치는
이제 들여야 하지 않을까?
2층 사랑방 감식초 담은 건 나중 언제 거르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막막함은 없겠지
내가 어머니 몫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이상하게 마지막날에 어머니를 모시는 여러 번 제사에
펑펑 우는 아버지 동생 사이로 나는 눈물이 흐르지 않고
덤덤했다.
집뒷산 오를 때 풍수를 잘 보시는 아버지 한 친구분과
인맥관계가 두터운 다른 친구분 덕분에 어머니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어머니 송이밭 시작되기 전
소나무 2그루 사이에 유골싸인채로 묻고
혼백을 태워 묻었다.
비석과 제사는 산에서 하면 잡귀도 같이 들러붙어
하지 말고 아래 집에서 해마다 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이쁜 하얀 돌 구해 표시만 해두기로)
새벽 6시 23분에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한 대로 글이 정리되어 나오지 못하고 어지럽다.
사일 장을 치르며 어머니의 크나큰 아픔마저도 글쓰기 재료로 생각하고 사진을 찍어대던 내 경솔함이 부끄러워 그 뒤로는 더 찍지 않았다.
내경험과 생각을 매일 써보는 게 내 꿈을 향한 첫걸음인 것 같아 해 보려는데 일이 밤늦게 까지 이어져
쉽지가 않다.
아침일이 있기에 일단 이 글을 마무리한다.
같은 경험을 해도 관심과 집중을 어느 방향으로
하느냐에 따라 글의 성격이 달라졌다.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쓰려했더니 내가 속도와
범위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좀 더 세분화하여
이 글을 한 목에 파악해 줄 제목과
내용을 염두하여 계속 시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