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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Jul 18. 2024

연구자의 가슴에 한 번 더 새기는 마음들

2013년 9월 기록 그리고 2024년 7월에 덧붙이는 기록

2013년 9월 기록


내가 유달리 예뻐하고, 나를 잘 따르던 아이가 작년 퇴원할 때 즈음에 유치원 졸업이라고 했었다. 이번에 컨디션이 나빠져서 다시 입원을 했다. 혹시 초등학교 입학은 하였냐고 물었더니, 그러지는 못했다고 했다.


문득 작년 처음 입원해서 아이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가 몇 날 며칠을 울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는 멀리 보지 않는다고.

하루하루를 기대한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속으로 화가 많이 났었더랬다.


왜 그 엄마에게는 당신의 딸이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도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어보고, 수능도 보고, 대학생이 되어 원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친구도 사귀고, 세상 곳곳 여행도 다니고, 화장도 해보고, 나중에는 결혼도 하고, 딸이 딸을 낳아 손녀딸을 품에 안아보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쉬이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 그런 평범함을 평범하게 경험할 수 없고, 그 일상이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것이고 마는 사실이 나는 화가 났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과 줄 맞추어 서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이도 내심 아쉽고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속상하다.

속상하다.

많이.


/ 간호사 김가영


 

2024년 7월 기록


2013년 스물여섯의 내가 기록해 둔 일기를 읽으며 다시 그때의 감정을 느낀다.


지금 서른일곱의 나는 엄마가 되어 있고, 그때 만난 그 예쁜 아이와 비슷한 나이가 된 딸이 있다.


그래서 지금, 그때의 내 감정의 깊이보다 더 사무치는 슬픔을 느낀다. 내 딸이 초등학생이 되어 입학했을 때 학부모가 되는 마음을 직접 느껴보니 그때 아이의 엄마가 느꼈을 슬픔을 감히 가늠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아니, 타자인 나는 사실 감히 가늠해서도 안되고, 가늠 비스무리하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병동 간호사로 일을 하며 수많은 아이들을 간호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 속의 얼굴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중의 한 아이가 바로 2013년 기록 속 아이다.


그리고  2013년 일기에 기록해 둔 그 때의 내 마음은 지금 하고 있는 연구를 하며 늘 떠올리고, 가슴에 다시 한번 더 새기는 마음이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나에게 수줍게 건넨 편지 속 아이는 빨리 치료받아서 집에 가겠다고 했는데 우리는 아이를 더 아득히 멀리 보내주어야 했다.


간호사로서도, 엄마가 된 지금에서도

그 시간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에는 아픔이고 슬픔인 시간들이다.


소아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연구를 하고 있는 지금의 연구자로서의 시간은 내 마음에 남은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내 연구에 진심을 담고,

마음을 담고,

사랑을 담는다.



/ 간호연구자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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