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평일 아침 운전석에 앉아 창밖을 보니 분주한 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진다. 학교 앞 신호등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들, 버스에서 내려 어디론가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아침 버스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만원버스가 되었다. 나의 일상 또한 그 바쁜 일상속에 살아가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매일 바쁜 일상의 살다보니 어느 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었고 아이들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이젠 둘만이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부란 별다른 대화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고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일상을 보낸다.
주말 아침 여섯시에 눈을 뜨니 벌써 하늘은 열려 있었고 햇살이 가득하다. 뜨거운 물 한잔을 들고 정원을 나오니 색색의 꽃이 피어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흰색 샤스타데이지 계란프라이를 닮아 계란꽃이라고도한다. 4월부터 제일 먼저 피어나 정원을 채우고 있다. 진분홍 끈끈이대나물 꽃잎은 다섯장으로 작은 꽃이 여러겹 겹쳐있어 큰 송이를 이룬다. 청보랏빛 수레바퀴는 꽃잎이 바퀴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 빨강색, 연분홍색 양귀비 샛노란 캘리포니아 양귀비, 보라색 으아리꽃, 담장에 빨간 장미도 다섯 송이가 피어 있어 잠시 감상에 빠진다.
텃밭에는 지난 주 심은 대파모종이 자리잡고 있고 상우, 고추, 오이, 호박, 감자, 강낭콩, 완두콩 모두 건강히 자라고 있다. 잔디밭을 보니 뾰족뾰족 잔디 사이로 잡초가 올라오고 있다. 창고에 있는 장화를 신고 장갑도 끼고 엉덩이 의자를 들고 나와 잡초소탕작전을 벌인다. 늘 하던 아침산택을 잠시 뒤로 미루고 잡초를 뽑는다. 어느 새 남편도 나와 합류했다. 한번 씩 지나간 자리는 잡초가 없이 말끔해지니 기분도 좋아졌다. '아침 뭐 줄까?' 물음에 ' 아무거나'라고 말한다. 참, 성의없는 대답이다. '갈치구워줄까?" 그러던지>>>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갈치 네 토막을 노릇노릇 구웠다.
야외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남편은 갈치구이를 나는 텃밭의 상추를 씻어 쌈을 싸 먹는다. 요즘 나의 최애는 상추다. 텃밭에서 뜯어서 거의 매일 밥상에 오르고있다. 밥 양은 줄이고 상추를 대신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다. 설거지를 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남편과 잠시 풍경을 보다 "난 산에 갔다 올께" 아침에 미뤄두었던 산책을 간다. 신발장에서 아디다스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3년 전 구입한 신발, 산을 가도, 들을 다녀도 내 발을 보호해주고 오래 걸어도 발이 편안해 아예 시골에 놓고 신는 나의 친구다.
집 뒤편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도비산과 연결되는 작은 산이 나온다.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주변에 안동김씨 선산이 있어 길은 잘 닦여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우거진 숲이 나오고 인적이 드물어 원시림처럼 오래된나무가 빽빽하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지만 어두운 산길이다. 오랫동안 쌓여 썩어가는 나뭇잎들이 푹신푹신 발걸음을 감싸주고 제각각 자신의 모양대로 드러누운 바위를 밟으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누군가 나뭇가지에 매어놓은 빨간리본이 참으로 반가운 건 누군가 지나간 듯한 위로를 받아서였을까?
숲길을 빠져나와 포장된 임도는 햇살이 찬란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코발트빛으로 빛나고 하얀구름이 흐트러져 더욱 높아 보인다. 바람을 살랑거려 더운 살갗을 식혀주고 흔들거리는 나뭇가지도 바람따라 일렁인다. 양쪽에 드리운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숲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조차 고요한 음악처럼 흐른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천천히, 들리는 건 내 발자국소리와 작은새들의 소리 나풀나풀 작은 호랑나비 한 마리가 주위를 한참을 맴돈다. '왜? 어디가려구' 습관적으로 아이들처럼 말을 건네본다.
이정표를 따라 정상으로 가는 길과 부석사 가는길의 갈래에서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소나무들이 양쪽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어 시원한 그늘이다. 바닥은 솔잎들이 쌓여 푹신한 느낌을 주고 걷기에도 편하다. 조금 더 오르니 나지막한 야자매트로 덮여 있는 작은 둔덕이 나온다. 360도 회전하며 서산시내부터 태안 안면도 바다까지 보이는 헹글라이더장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먼 바다까지 보이고 바람도 불어 온몸을 감싸고 돈다. 두 팔을 벌려 온 몸으로 바람을 느껴본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정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인적은 드물고 혼자만의 호흡으로 산을 느낀다. 도비산은 바위가 많다. 산길 곳곳 거대한 바취가 서 있고 누군가 세워놓은 것처럼 꼿꼿이 서 있어 웅장함을 자랑한다. 길가의 보랏빛 엉겅퀴 한 송이가 피어 바람에 흔들린다. '예쁘다' 잠시 걸음을 멈춰 들여다보니 꿀벌이 꽃과 사랑에 빠졌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오르막길, 계단에 묶인 밧줄을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내 딛는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대쯤 계단 끝에 하늘이 열리고 도비산 정상 351미터라는 표석이 서 있다. 숨을 고르며 바다 쪽을 보니 햇살을 받은 바닷물이 반짝이며 빛난다. 바다를 개간한 간척지 논이 바둑판처럼 보이고 좋은 날씨 덕에 저 멀리 바다의 푸른 물결과 작은 섬까지 보인다.
하산 길 석천암 쪽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와 흐르는 약수를 마시고 세수도 한 번 하고 흐르는 땀을 씻어 낸다. 내리막길을 따라 걷는데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붉은 빛을 자랑한다. '그래, 이건 먹어줘야지' 한 알 따서 입에 넣으니 자연의 신맛과 달콤한이 어우러진다. 새콤한 맛에 미간이 찌푸려지지만 자꾸만 손이 가 한알, 두알,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먹는다.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계곡을 따라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좋고 내려다보이는 모월저수지와 인지면 넓은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모내기 철이라 논에 물이 그득 차 있고 이양기로 모내기를 하느라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넓은 밭은 마늘을 수확하는 손길로 바쁘다.
평일 바쁜 일상을 살아내고 주말 잠시 쉼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일이다. 전원생활을 하며 자연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느긋이 주변도 관찰하고 분주했던 일상을 느리게 여유롭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자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키우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기쁜을 느낀다. 모종으로 심었던 고추에 하얀꽃이 피고 초록색 고추가 열리고 한주간 지나면 상추가 자라있고 뜯으면 또 자라있다. 자연은 이렇듯 베풀기만 하는데 그 자연으로 인해 치유받고 위로받고 있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떠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