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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Nov 26. 2024

고남리의 봄 2

봄나물

고남리에서의 첫 봄, 마당에는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린다. 어릴 적 민들레 꽃 따서 소꿉놀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금요일 퇴근길 고속도로를 달려 고남저수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는 길, 제일 먼저 저수지 등성이에 돋아난 초록색 수선화가 움을 트고 노란 꽃대를 올리려 애를 쓴다. 길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벚나무도 꽃망울을 한껏 부풀어 봄을 준비하고 있다.


  깜깜한 마당에 들어서면 윗집 개가 멍멍 짖는다. '이모야'라고 말하면 알아듣고 조용해진다. 집에 불을 켜고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올리고 취사버튼을 누른 후 마당가에 있는 텃밭에 나가 본다. 유채의 어린잎사귀가 겨우내 땅속에 있다가 따스한 햇살을 받아 초록초록 올라와있다. 작은 바구니와 칼을 들고 깨끗하게 솎아내서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준다. 된장을 풀어 일부는 끓이고 나머지는 쌈채소의 재료가 된다.


  밥과 국이 끓는 동안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는 남편, 일주일간 고요하던 집안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부지런히 청소기를 끌고 와서 드르륵드르륵 윙 윙, 청소기를 돌린 후 물걸레질도 한번 한다. 그 상이 전기밥솥에서는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리고 냄비 위에 올려놓은 된장국도 보글보글 끓었다.


  은색 쟁반우에 고기 한팩, 쌈채소, 쌈장, 김치, 된장국, 흰쌀밥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 저녁식탁을 차린다. 네모난 CU테이블에 앉아 별을 보며 밥을 먹는다. 아직은 초봄이라 쌀쌀한 날씨에 겨울점퍼를 입었지만 그래도 봄의 냄새와 느낌을 느끼고 싶다. 불판이 고기가 지글지글 익으면 유채잎사귀와 쌈장 그리고 알싸한 청양고추 한 조각 넣고 한입에 넣으면 일주일간의 바빴던 일과가 마무리된다. 금빛 양은잔에 막걸리 한잔 따라서 짠하고 마시며 시골의 밤공기에 취해본다,


  '꼬끼오' 이른 새벽부터 윗집 닭장에는 아침을 알리는 꼬꼬닭의 외침이 들린다. 거실로 나와 지난밤 꺼졌던 벽난로의 불씨를 붙여 장작을 몇 개 넣어놓으면 금세 훈훈한 공기로 바뀐다. 커피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여 머그잔에 담아 창문을 열고 봄 공기를 마셔본다. 뒷곁 밤나무와 윗집 밭두렁에 있는 자두나무에는 벌써 하얗게 봄을 알리는 꽃이 송이송이 피어난다. 점퍼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다. 잠든 남편을 깨우지 않고 새벽공기를 마시며 아침산책길, 아련한 안개가 피어올라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작은 발자국 소리도 어떻게 아는지 아랫집 멍멍이가 소래 내어 짖는다. 논둑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도착한 고남저수지에는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고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간다. 저수지에는 아련한 안개가 피어올라 멋진 풍경이 연출된다.


  잠시 해를 기다리며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으로 몸을 움직여본다. 붉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 안개사이로 서서히 떠올느 태양은 금세 저수지위로 떠올라 동그랗게 하루해를 밝혀준다. 햇살을 뒤로하고 저수지 초입 초록빛으로 돋아난 수선화도 보고 뒷동네가 궁금해 봄향기를 맡으러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아직 농사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곧 바빠진  논에는 부지런한 농부의 발걸음이 논둑길을 따라간다. 흠흠 시골의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다. 이른 아침의 향기는 언제나 좋다.


  만보 걷기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다시 되돌아왔던 길을 걸어온다. 봄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새벽에 보지 못했던 길가의 새싹들이 봄을 느끼며 저마다 싹을 틔우느라 바쁘다. 우리 집 마당에도 하얀 솜털처럼 아기쑥이 뾰족뾰족 돋아나고 노란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었다. 그래, 오늘은 쑥을 뜯어 된장국을 끓여보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마당에 돋아난 쑥을 한 줌 뜯고 어젯밤 텃밭에 있던 유채나물도 조금 뜯었다. 뒤꼍 밤나무밑에 가보니 연두색 뾰족한 잎사귀가 돋아나있다. 검색해 보니 참나물이란다. 과일칼과 바구니를 들고 나와 참나물을 바구니 가드도 뜯고 집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일어나서 벽난로 옆에 장작을 채우는 중이다. 종이 상자로 두 박스 갖다 놓아도 주말 지내기는 모자란 양이다. 밥을 어제저녁 밥솥에 있고 된장국에 쑥을 넣고 끓이고 참나물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참기름, 소금, 다진 마늘, 참깨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따스한 햇살아래 소소한 반찬과 된장국을 놓고 등에 햇살을 받으며 아침을 먹노라니 마치 자연인이 된 느낌이다. 천천히 밥을 먹으며 남편과 나무하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고남리의 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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