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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덕대게 Mar 20. 2024

[프롤로그] 우울증의 첫인상

처음 만난 우울증, 그리고 영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당황스러웠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하루종일 이불속에서 소리 없는 눈물만 흘리던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우울은 불현듯 찾아와 사람을 180도 바꿔놓는다. 아픈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생살을 도려내게 만들고, 무병장수가 꿈이었던 사람이 자살 시도를 하게 만든다. 사실 우울증에 걸리는 과정은 급진적이지 않다. 지그시, 서서히 고통이 쌓여 특정한 임계점에 닿았을 때 폭발하는 것이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 서서히 누적되는 과정을, 본인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각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나를 괴롭히던 존재는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나는 사람이 지독하게 싫다. 아,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인간은 혐오스러운 존재다. 인간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존재인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허무맹랑한 헛소문들과 가십거리들은 듣고 있기만 해도 절대정신이 떨어지는 것만 같고, 이들과 함께 있을 바엔 집에서 책 한 문장이라도 더 읽는 것이 건설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렇게 난 언제부턴가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이 모든 것이 소용없음을 인지하고서부터,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 본질을 위임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주변 환경에서 인간을 하나 둘 없애기 시작했다. 난 사회와 물과 기름이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다가와준 것은 영화였다. 시네마는 창작자의 삶이 녹아져 있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그러한 시네마와 나의 삶이 공명하며 일으키는 마법 같은 순간. 나는 그 순간을 글쓰기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 나름의 시선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그 영화에 대해 비평하는 것. 이는 창작자와 수용자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으며, 사회의 이방인이었던 내가 다시금 생기를 되찾는 과정의 일부라고 느껴졌다. 나는 우울해 미칠 것 같은 순간에 오히려 우울한 영화를 시청한다. 내부의 우울을 산화시킬 수 있는 매체를 찾는 것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나 할까. 영화 속 인물과 나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부에 묵힌 우울을 단기간에 배설해 버리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시네마적 체험의 극단에서 내가 느꼈던 우울에 대한 상념과 감정 상태를 가감 없이 공유해보려 한다. 우울증과 영화. 내 삶을 이루는 가장 큰 두 요소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조금이라도 내 안에 케케묵은 우울증이 조금이라도 극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 글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글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나 또한 이기적인 인간의 일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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