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어
이준의 작은 손이 어항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에게 닿을 때마다, 그의 세상은 마법처럼 변했다. 그의 나이 열 살 남짓, 작은 손가락이 물고기와 함께 놀며 빛을 반사하는 비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고기는 이준이라는 아이의 유일한 친구이자,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작은 창이었다. 방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물고기가 유영할 때마다 생기는 작은 물결이 반짝였다. 신비롭고 따스한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이준은 물고기와 함께 집 앞에 있는 호수에 가 탁 트인 물가를 바라보며 평화를 향유하기 일쑤였다. 여름밤의 서늘한 공기가 그의 뺨을 간질였고, 발밑에선 바스락거리는 풀벌레들의 소리가 조용한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는 손에 작은 어항을 들고 있었고, 어항 속에는 반짝이는 물고기가 한 마리 헤엄치고 있었다. 물고기의 은빛 비늘은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모습은 마치 작은 별이 물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호수에 도착하자, 이준은 어항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물가에 무릎을 꿇었다. 호수는 고요했고, 수면은 거울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이준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압도된 그는, 작은 물고기에게도 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준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호수의 물결 소리,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순간, 이준은 자연이 주는 평화와 아름다움에 압도되었다.
다시 눈을 뜨고, 그는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물고기는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이준은 그 작은 생명체가 자신과 함께 이 순간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물고기에게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너도 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지? 이 호수, 이 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이야."
이준은 호수 앞에 앉아,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작은 물고기와 함께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했다. 풀잎과 물결 속에서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의 일부임을 깊이 깨달았다. 그 밤, 호수는 이준과 물고기에게만 열려 있는 비밀의 정원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평화를 발견했다.
이준은 한동안 물고기와 함께 평온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자연의 신비로운 공기가 몸을 떠나지 않았을 무렵. 이준은 물고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당탕. 갑자기 집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강한 소음이 들려왔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깨질 듯한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평화로웠던 이준의 작은 가슴은 한 순간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으아악!” 엄마의 비명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동시에, 아빠가 던진 무언가가 어항을 직격했다. 유리는 산산조각 나며 바닥으로 흩어졌고, 물고기는 바닥에서 허덕이며 어떻게든 생을 연명하려 애썼다.
“안 돼!” 이준은 공포에 질린 채 소리쳤다. 그는 바닥에 퍼덕이는 물고기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젖은 유리 조각뿐이었다.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깨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아빠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어!” 그는 무언가를 또 던졌다. 이번엔 거울이 산산조각 났다.
“네가 더 잘했어야지!” 엄마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이 가정을 지키려고 했는데, 다 네 탓이야!”
이준은 물고기를 살리려 애쓰며 부모님에게 달려가 외쳤다. “엄마, 아빠! 물고기가...”
그의 말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부모님은 서로를 노려보며 송곳 같이 날카로운 말을 사정없이 찔러내고 있었다. 물고기의 허덕임이 점차 잠잠해져갔다. 그 생의 몸부림이, 꺼져가고 있었다. 이준은 젖 먹던 힘을 쥐어짜서 크게 소리쳤다. “물고기를 살려주세요!!”
그러자 아빠와 엄마는 싸움을 멈추고 동시에 이준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와 증오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차가운 눈빛은 점점 이준에게로 향했다.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불현 듯 아빠가 쏘아붙였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거친 손으로 이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네가 없었으면 우리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거야!”
엄마도 같은 말을 반복하며, 눈물 가득한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었어. 네가 우리 인생을 망쳤어!”
이준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그는 현실이 아닌 꿈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의 비난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가운데, 이준은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꿈 속에서 깨어나고 싶었지만, 현실과 꿈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갑작스럽게, 이준은 강렬한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의 소용돌이가 그의 의식을 휘감으며, 꿈과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깨어났다. 눈앞에 펼쳐진 어둠이 그의 시야를 삼켰다. 차가운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심장은 폭발할 듯이 뛰고 있었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진 가족사진이 눈에 띈다. 어두운 방 안은 더 이상 어릴 적 그 방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방은 단순히 네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을 짓누르는 고통의 감옥이었다.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고, 한 줄기 빛도 허락되지 않았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고 정체되어, 마치 그의 폐를 조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작은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자주 사용하던 면도날이 놓여 있었다.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면도날을 집어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손끝에 닿자, 그는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다음, 무심하게 손목에 면도날을 그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지만, 이내 무감각이 그를 덮쳤다. 피가 손목에서 흘러내리며, 그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그는 손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바라보며, 책상 위에 놓인 약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러 개의 항우울제와 진통제 병이 있었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약병을 열어 알약 몇 개를 꺼냈다. 물 한 모금 없이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그 약들이 그의 고통을 잠시나마 덜어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도피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며 그의 의식은 흐릿해졌다. 통증도, 고통도 모두 희미해져 갔다. 이준은 자신을 어둠 속으로 내던지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잠은 고요하고 무거웠다.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깨어나면 다시금 같은 절망과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의 존재는 이미 무의미해져 있었다. 살아 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준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끝없는 어둠과,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의 무게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이미 너무 많이 지쳐 있었고, 더 이상 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삶은 무기력한 체념과 허망함 속에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이준은 갑작스레 결심한 듯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오늘이다...” 그는 속삭였다. 이준은 부엌에서 거대한 식칼을 가져와 자신의 손목에 날을 접촉시킨다. 서늘한 감각이 온몸을 에워싼다. 이준에게 더 이상 생의 미련 따위는 없었다. 그는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을 감고, 한 숨을 내쉰다. 칼을 든 손에 온 힘을 집중하고 손목을 그어버릴 찰나, 어항 속 물고기가 눈에 밟힌다. 이준은 어항을 들고 집 앞 저수지로 향했다. 물고기를 풀어준 다음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얕은 물에서 허덕이는 녀석의 몸부림이 이준의 발을 묶었다. 이준은 한동안 그 생의 몸부림을 바라보았다. 이준은 생각했다. ‘아, 너는 아가미로 호흡하는구나. 나는 어쩌면 폐로 호흡하는 물고기일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된 이준에게 저수지는 여전히 특별한 장소였다. 마음이 아플 때면, 그는 어린 시절처럼 저수지로 향하곤 했다. 물고기가 없는 지금도 그는 그곳에서 위안을 찾았다.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그는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저수지의 물은 항상 변함없었고, 그 고요함은 이준의 상처받은 마음을 감싸 안았다.
죄책감을 덜어낸 이준은 집으로 돌아와 다시금 식칼을 들고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때, 이준은 문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처음엔 환청이라 생각했지만, 노크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그 앞에는 한 학생이 서 있었다. 아이는 10살 정도로 보였고, 눈에는 두려움과 공포심이 섞여 있었다.
"누구세요?" 이준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거칠었다.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민호라고 해요. 이웃집에 살아요.“
이준은 잠시 민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민호의 얼굴에서 자신과 같은 고통의 흔적을 발견했다. 민호의 팔과 다리에는 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그의 눈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준은 민호를 자신의 어수선한 방 안으로 들였다. 방 안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와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준은 민호에게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민호는 주저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아빠가 술에 취하면 아주 무서워져요. 엄마도, 저도 자주 맞아요. 그래서 도망쳐 나온 거예요." 민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준은 방 한켠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자신도 민호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이준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묵묵히 민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이준은 민호의 눈에서 자신을 보았다. 그가 악몽에서 보았던, 어린 시절의 자신. 학대받던 어린아이의 모습을 민호에게서 다시 본 것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민호를 구해야 했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과거를 구하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민호의 눈동자에는 자신이 잃어버린 순수함과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 그 눈빛은 이준의 마음 깊숙한 곳을 흔들었다. 민호를 바라보는 이준의 눈은 차가운 현실을 넘어, 따뜻한 보호 본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렸을 때 나도 네 나이였을 때..." 이준은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어."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준은 과거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민호에게 하고 있었다.
민호는 눈을 깜빡이며 이준을 바라보았다. "형도... 무서웠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준은 민호의 작은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무서움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지. 시간이 지나면, 두려움도 무뎌지고, 고통도 익숙해져. 나중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돼." 이준의 눈에는 고통과 체념이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민호를 향한 따스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민호는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그래도... 그래도 형은 살아남았잖아요. 어떻게 버틴 거예요?"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버텼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냥 살아남은 거지. 그런데 살아남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이준의 말은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민호에게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민호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형, 그럼 우리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해요? 아무것도 안 바뀌고?"
이준은 민호의 눈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눈 속에는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었다. 이준은 그 순수함을 보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넌 나와는 다를지도 몰라," 이준은 힘겹게 말했다. "아직 어리니까, 뭔가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이준의 말은 민호에게 보내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었다. 그는 민호가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 문이 쿵쿵 두드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민호야! 거기 있지? 문 열어!" 목소리는 술에 취해 갈라져 있었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준은 민호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창문으로 나가. 무작정 숲을 향해 달려.“
민호는 주저했지만, 이준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창문 쪽으로 향했다. 이준은 부엌에서 식칼을 챙기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거칠게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손에는 빈 술병이 들려 있었다. 그의 상태는 잔뜩 취한 듯 했다.
"누구세요? 누군데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오세요?" 이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이준을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내 아들, 민호 어딨어? 너희들이 내 아들을 숨겼지?" 그는 비틀거리며 이준을 밀쳐내고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이준은 문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만둬요! 민호는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민호의 아버지는 비웃으며 말했다. "넌 뭐야! 네가 뭘 할 수 있겠냐?" 그러고는 이준에게 덤벼들었다.
이준은 식칼을 들고 그 앞을 막아섰다. "한 발짝도 더 다가오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호의 아버지는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이준과 민호의 아버지는 몸싸움을 벌였다. 민호의 아버지의 분노에 찬 얼굴이 가까워지며, 그의 거친 손이 이준의 목을 감싸며 꽉 조였다. 이준은 숨이 막혀오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의 허약한 신체는 금방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 순간, 민호의 아버지가 깨진 술병을 들어 올리더니, 이준의 머리를 내리쳤다. 날카로운 통증이 머리 전체로 퍼져나갔고, 피가 흘러내렸다.
"어디 숨었는지 다 알아. 민호야!" 민호의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며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한계에 다다랐지만, 이준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민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민호가 자신처럼 절망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조용히 숲을 향해 걸어갔다. 걸음걸이는 불안정했고, 몸은 피로와 고통으로 떨렸다.
숲에 다다르자,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 앞에는 작은 그림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민호는 달빛 아래서 눈물을 흘리며 고요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민호에게 다가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민호에게 도움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연락했다.
"아이 하나가 숲에서 홀로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그의 목소리는 힘겹게 나오며 떨리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준 후, 그는 핸드폰을 끊었다. 경찰의 도착을 기다리며, 이준은 멀리서 민호를 지켜보았다.
이준은 피로에 지친 몸을 부여잡고, 숲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달빛이 그의 길을 비추었고,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걸음걸이는 점점 더 느려졌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이준은 나무 밑에 몸을 기대며 천천히 앉았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더 이상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몸은 차가워졌다.
마지막으로 깊은 숨을 내쉬며, 이준은 눈을 감았다. 달빛 아래, 호수는 여전히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민호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닦아냈다.이준은 자신이 민호를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이준은 어둠 속에서 홀로 남겨졌지만, 그 순간 그는 자연의 속삭임을 들었다. 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 그리고 땅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진동들. 그는 자신이 점점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피는 땅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의 숨결은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그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면서도,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더욱 생생하게 느꼈다. 인간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이 과정은 고통에서의 해방이었다. 이준은 인간 세계의 잔혹함과 냉혹함이 더 이상 자신을 얽매지 못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그의 정기가 서서히 땅 속으로 스며들고, 영혼이 나무의 뿌리와 잎사귀로 흘러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결단을 내린 이준은 천천히 깊은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그의 피부를 감싸며, 그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그 순간, 그의 손목에 남아 있던 과거의 상흔이 변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갈라지며, 물 속 세계를 들일 새로운 기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은 물 속에서도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의 몸은 마치 물고기처럼 물결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였고, 호흡이 안정화되었다.
물 속에서 이준은 더 이상 고통과 절망의 무게에 눌리지 않았다. 그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물 속을 유영하며 영원히 살아갈 운명이었다. 호수의 물결은 잔잔히 일렁였고, 달빛이 그 위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그때, 그의 앞에 두 마리의 물고기가 나타났다. 하나는 그가 어린 시절 키웠던 물고기였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키우던 물고기였다. 두 물고기는 이준을 향해 다가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어린 시절의 물고기는 그때의 따뜻한 기억을, 현재의 물고기는 최근의 고통과 외로움을 상기시켰다.
이준은 그 물고기들과 함께 물 속을 헤엄치며, 과거와 현재를 모두 받아들였다. 물고기들과 함께 유영하며,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진 자신을 느꼈다. 고통과 절망은 물결에 씻겨 내려가고, 그의 마음은 평온과 안정을 찾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홀로 고통 속에 머물지 않았다. 물고기들과 함께 그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호수의 물결은 여전히 잔잔히 일렁였고, 달빛은 그 위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이준의 영혼은 그 물결 속에서 평화롭게 흘러갔다. 인간의 세상은 그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자연의 고요함이 그를 감쌌다. 그의 존재는 이제 그 고요한 호수와 숲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준은 더 이상 인간 세계의 고통과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자유로워졌고, 그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살아갔다. 호수는 그를 품었고, 숲은 그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이준의 영혼은 이제 자연 속에서 영원히 평화를 찾았다.
두 마리 물고기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이준은 그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물 속에서의 그들의 유영은 하나의 춤처럼 아름답고 조화로웠다.
호수는 별빛으로 일렁이며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렸다. 안개는 은밀하게 피어오르고, 은빛 파도는 잔잔히 속삭였다. 작은 물고기 하나가 반짝이며 물 위로 올랐다가 사라졌다. 호수 깊은 곳에선 오래된 비밀이 잠시 깨어났다.
물살 속에서 두 마리의 물고기가 헤엄친다. 은빛 물결이 그를 감싸며 춤을 추었고, 별빛은 물방울에 반사되어 깜빡였다. 별들은 호수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물결은 꿈처럼 은은한 무늬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두려움도 고통도 없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완벽한 조화였다.
호수 깊은 곳에서 잊혀진 꿈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가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빛나는 산호초와 반짝이는 물고기들이 반겨주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