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달궁야영장에서 캠핑을!
추석명절이 돌아오면 시댁 식구들은 한자리에 모인다. 대부분 큰집에 모여 밤새 윷놀이를 하거나 고스톱을 치기도 했고 세월이 흘러 요 몇년 사이에는 팬션이나 캠핑을 예약해서 모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모두 모이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제일 큰 누님과 형제들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는 분위기가 되었다.
전과 비교 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부모님이 작년에 모두 돌아가셔서 올해는 추모관에 먼저 모여 인사를 드렸고 다음 날은 각각 맡은 음식과 장비를 챙겨 캠핑장에서 다시 모였다. 우리는 생선과 김치를 맡았는데 시어머님의 요리솜씨를 이어받은 남편이 비싼 금배추와 쪽파를 사서 그야말로 뚝딱! 전라도식으로 간간하게 배추김치와 파지를 담아 뿌듯한 마음으로 2박3일의 캠핑 여정을 시작했다.
자주 이용했던 지리산 달궁야영장이 공사 중인 관계로 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근 야영장을 예약했는데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조용했고 계곡 물도 더 깊고 넓어서 어른들이 같이 놀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우리도 제법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고 자식들이 하나 둘 시집 장가를 가고나니 해가 지날수록 모이는 식구들도 점점 늘어났다.
3형제 중 큰집 식구만 해도 딸 둘에 사위와 손주들까지 모이니 살림살이가 만만치 않았다.
큰 텐트와 작은 텐트, 이불, 매트 등 잠잘 준비만 해도 당연히 2배 이상 준비해야 했고 선풍기 2대, 물놀이 튜브도 성인용 뿐만 아니라 보트와 몇 배나 더 큰 대형 오리배며 애들 용품과 장난감, 하다못해 유아용 좌변기 그리고 가족들 식사준비를 위한 전기밥솥과 온갖 잡동사니들까지 도대체 이 많은 짐이 어떻게 한 차에 다 들어갈 수 있었는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누가 보면 냉장고와 TV 빼고 집 안에 있는 살림을 모두 퍼다 날랐다고 생각할 만큼 산더미 같았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더 즐겁고 편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야겠다~!
텐트를 치다가도 살짝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구슬땀을 식히고 하나씩 짐들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보기 좋은 집들이 완성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가을 준비를 마친 갈색 낙엽들이 하나 둘 텐트 지붕 위에 내려 앉고 높이 자란 상수리나무 열매가 잊어버릴 만하면 ‘톡’ 하고 떨어졌는데 모자를 벗은 민머리를 드러내며 떼구르르르 굴러 다니는 모습이 어디선가 내려다 보고 있을 다람쥐 가족을 부르는 것 같았다. 다시 찾은 지리산은 우리 가족의 추억이 가득한 정든 고향같아 항상 설레고 반가왔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했다. 조금 이른 추석이긴 했으나 낮 더위는 여전히 찜통이어서 수모와 수경이 아닌 챙이 넓은 모자와 햇빛 가리개용 마스크를 썼더니 폼은 영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개헤엄도 치고 물고기도 잡고 입술이 시퍼래지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햇볕을 전면 차단한다고 신경썼는데도 나중에 보니 시커멓게 탔다.
18명의 대식구가 모이니 전기 밥솥 한번으로는 밥이 부족해서 2번씩 했다. 숯불에 구워먹는 생선도 전어. 병어. 조기. 고등어 등 종류가 다양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불판에 삼겹살과 갈비가 지글지글 육즙을 내뿜으며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마직막 코스는 삼겹살 구운 기름에 남은 밥을 모두 모아 김치를 섞고 볶음밥을 만들었는데 모두들 다시 새롭게 식사를 시작하는 듯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만큼 싹싹 비웠다.
저녁에는 미리 모아둔 나뭇가지와 참나무로 모닥불을 피우며 불멍을 했다. 이제 더 이상 시부모님과 함께 할 수 없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한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화장실이 조금 멀었는데 꼭두새벽에 시누이가 무섭다며 많고 많은 식구들 중 하필 나를 호출하신 바람에 두 번씩이나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고요한 숲속을 팔짱 끼고 걸으며 아기 냥이와 노닐던 길냥이도 보고 대낮같이 환한 보름달을 친구삼아 반짝반짝 하늘을 수놓던 별들의 무리도 더 자세히 볼 수 있어 운치있고 좋았다.
밤을 꼬박 지새우는 계곡 물소리는 어릴 적 시골집을 생각나게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를 하던 시냇가가 집에서 가까웠는데 비가 좀 많이 온다 싶으면 지축을 뒤흔들며 밤새 굉음을 내던 물소리가 무서워 잠 못 이루던 날도 있었다.
또한 명절이 되면 아빠가 종갓집 장손인 이유로 집안에 손님들이 많이 북적였다. 그래서 어린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았었다.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많아 주로 나 혼자서 엄마를 도우고 친척이나 손님 맞이를 했는데 먼저 넓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듬성듬성 빼꼼이 내밀고 있는 잡풀들을 하루종일 뽑아내고 비질을 했다. 그리고 자질구레한 심부름은 기본이고 명절 당일이 되면 사방이 어두컴컴한 꼭두새벽에 일어나 눈꼽만 대충 떼고 차려진 음식들을 나르거나 상차림을 도와야 했다. 엄마가 시장이나 방앗간에 가실 때면 엄마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자주 따라다녔던 기억도 있다. 100원이라도 깍기 위해 실랑이질을 하실 때면 어린 마음에도 속상했지만 구수한 참기름 향기 가득한 방앗간에서 길게 뽑은 가래떡 한입씩 얻어 먹으면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매일 밭으로 논으로 깜깜한 밤이 되도록 일을 손에 놓지 않고 바쁘게 사시면서도 종갓집 며느리로서 챙겨야 할 집안 행사나 제사도 많아 늘상 손님 맞이를 해야하는 엄마를 보며 나름 비장하게 했던 나만의 결심이 있었다. ‘절대 큰아들과 결혼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지금 난? 셋째인 막내아들과 결혼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부모님과 26년을 살았다.
큰 시숙님은 텐트 치랴 걷으랴 침대 매트와 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뺐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고생하시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큰 형님도 우리의 일용할 양식과 먹거리 준비하시느라 마트에 들러 직접 장도 보시고 손주들 챙기랴 식구들 챙기랴 힘에 부치셨는지 '다시는 2박3일 캠핑 하지 말자'는 말씀까지 하셨다.
아마 내년에 다시 모이면 이번에 오지 못한 가족들과 앞으로 태어날 2세들까지 점점 식구가 더 늘어날테니 큰형님 말씀도 일리는 있다. 그때는 텐트 3동도 부족하겠다.
그런데 사실 고생고생해서 텐트 치고 하룻밤만 자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수고 해 주시고 도와 주신 덕분에 추석과 더불어 2박 3일의 캠핑을 여유롭고 즐겁게 잘 보냈다.
또한 청명한 새 소리 가득한 산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가 모두 어우러져 우리 식구들의 휴식과 여유를 위한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얘기하자면, 내 손에 익숙하지 않은 칼을 잡으면 왠지 손을 벨 것 같은 징크스가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어이 피를 보고 말았다. 컴컴한 밤에 과일 깍다가 찍!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편의 특기인 '돌 세우기'를 가족마다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곧잘 세워서 별로 신기한 재능이 아닌게 되었다. 그래도 돌 하나씩 세우며 가족의 안녕을 기도하고 저마다 도전에 성공해서 기뻐했던 추억도 좋았다.
식구가 계속 늘어나도 우리 식구들은 꿋꿋하게 다른 방법을 찾으며 또 모일 것이다.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