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학교 교사로 살면서 학생들에게 제법 들어본 질문이다. 이 질문을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도무지 '선생님'이라는 진로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의아해하고 답답해하는 말투였다. 바보나 호구를 보는 듯한 표정은 덤이었다.
요즘에는 학교에서도 개인 정보 보호가 대세라서 선생님의 학력이 공개되는 일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교장선생님께서 시업식 날 학생들에게 선생님을 소개할 때 출신 대학이나 경력까지 공개해 버리는 난감한 일이 더러 있었다. 혹은 동료 선생님을 통해 다른 선생님에 대한 정보가 알음알음 학생들에게 전해지기도 했던 시절에 받았던 질문이다.
외고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나는 '교사'가 되었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스스로에게 '그러게, 나는 왜 교사를 하고 있을까'라는 자문을 하면서도, 학생에게는 온화한 태도로 "선생님이 뭐 어때서? 덕분에 너(희)를 만났고, 너(희)를 가르치면서 보람을 얻고 있잖아?"라는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지금 누군가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이전과 같이 "보람이 있다"거나 "좋다"는 대답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학생을 만나서 가르치며 함께 학교생활하면서 얻는 즐거움이나 만족감, 보람은 퇴색되었고 이제는 피로도가 높고 소진되어 무척 지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성공이나 행복을 결코 보장해 줄 수 없고, 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학창 시절에 학업에 집중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아왔다는 증거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중고등학교에서의 높은 성적은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때, 어느 정도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왜 하필 '선생님'이 되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다 보니 '선생님'이 되었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아서 문과를 선택하여 외고에 진학했고, 외고에 다니면서도 정작 영어는 재미없었다. 문학을 비롯한 국어와 역사를 좋아하다 보니 그것만 배울 수 있는 대학 전공을 찾았다. 인문대학과 사범대학 중 순수 학문보다는 응용 학문이 더 나아 보여서 '00 교육학'을 선택했다.
사범대학에 진학하면서도 교사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으니, 생각해 보면 난 공부를 열심히 했어도 진로 탐색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가장 빠른 취업의 길은 임용을 봐서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내 전공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은 좋았다.
그렇게 나는 ‘교사’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의 내가 취업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했고 어쩌다 보니 교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교사'가 내 사명이고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학교에서 교사로서 교육적 가치를 추구하며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노력해 왔다.
내가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교사'만을 꿈꿔왔고 자신의 길이라고 확신하면서 교사가 된 친구들도 있었다. 꿈꾸던 직업이 교사라서 교직에 있는 친구들은 더 만족스럽고 행복할까, 난 늘 궁금하다.
"교사는 어때요?"
우연히 내가 교사임을 알게 된 우리 아이의 친구 엄마가 묻는다. 고등학생인 첫째가 한창 진로 고민 중이란다. 특정 과목을 좋아해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도 괜찮아 보인단다.
'아, 이거 정말 말리고 싶다!'라고 격렬하게 소리 지르는 마음을 뒤로하고, 작년부터 세상에 적극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교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덤덤하게 꺼내본다.
"저출생 시대에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고요. 요즘 학교에도 워낙 민원이 많잖아요. 그리고 '교사'라고 가르치는 것만 생각하면 안 돼요..."
'당장 저만 해도 탈출을 고민하는걸요.'라는 솔직한 말은 차마 못 했다.
불혹(不惑). 마흔이면 이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데, 정작 마흔이 되어서야 늦깎이 진로 탐색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오 년 동안 경험한 교직과 학교 현실이 어땠는지를 돌아보며 내가 앞으로도 '교사'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깊이 있게 고민해 보고 있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스티븐 킹의 말처럼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 삶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교사가 되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여러 가지에 대해, 그리고 교사가 아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