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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rnard Street Mar 21. 2024

죽음의 문제와 마주하기


나는 종교는 없었지만, 어느 때부턴가 죽음의 문제에 자주 그리고 깊게 몰입하게 되었다. 

언제부터 죽음을 진지하게 떠올렸는지 생각해보면 석사 과정을 하던 시절 즈음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더 많이 알고 더 잘 이해하고 싶어하는 개인적 습관 때문인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반드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몇 안되는 가장 자명한 진실임에도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간이 지닌 모든 공포의 근원은 '알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아주 어린 시절 깜깜한 침대 밑을 무서워하던 유년의 기억, 바나나 보트를 타다가 바다 한가운데 내동댕이 쳐졌을 때 발 밑에 느껴졌던 차갑고 시커멓던 심해의 감각,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앞으로 무엇이 내게 올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공포와 불안감의 근원이 '알 수 없음'에 있다면, 우리에게 가장 큰 공포와 불안을 주는 것은 죽음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른 살 즈음의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언뜻 잠에서 깼을 때 나는 거의 공황에 가까운 불안감과 마주했다. 그 불안은 스쳐가고 보고 듣는 타인의 무수한 죽음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나의 일이 될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왜 하필 그 날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 평범한 사실이 내 가슴에 섬뜩하게 와닿았다. 

죽음을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견딜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엄습해 왔다.




그 이후, 나는 죽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는 나름의 노력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 죽음학을 연구하던 여러 연구자들인 최준식 교수님, 정현채 교수님, 김자성 선생님 등의 글을 모두 찾아보았고, 해외에서는 죽음학 분야에서 이미 아주 유명했던 레이먼드 무디, 퀴블러 로스, 이안 스틴븐슨 등의 글과 자료를 접하기도 했다. 임사체험에 관한 의학 저널의 논문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다. 


한동안의 방황 아닌 방황을 하게 되면서 내가 내리게 된 나름의 결론은 죽음 이후란 믿음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앎의 영역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었다. 




표층 종교의 구분을 넘어서 심층 종교의 차원에서는 인류 역사의 수많은 종교인, 선지자, 깨달은 자,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이때쯤 들게 됐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인간의 성격과 감정을 가진 이른바 질투하고 시기하고 벌주고 분노하는 인격화된 신일리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신이란 온 우주의 질서, 혹은 운행원리 그 자체일 수도,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인간도 그 자체로 신의 일부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종교에서 말하듯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 혹은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여전히 나는 자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고 마주한다. 


우리가 지구별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여정의 다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그리고, 우주 속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이 지구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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