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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야 Mar 16. 2024

50대에 이룬 꿈 나의 버킷리스트

필리핀 은퇴이민

은퇴이민자의 천국이라는 필리핀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여 지내온 지 어느덧 15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막연히 꿈으로만 간직해 오던 외국에서의 생활이 현실로 이루어지기까지는 불과 몇 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나이 50에 접어들면서 뭔가 인생의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 하던 즈음 우연히 한 여행사의 필리핀 은퇴이민 답사여행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여름방학 기간에 다녀온 그 답사여행 중에 다스마리냐스(Dasmarinas)라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에 반해 은퇴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23년간 근무하던 교직생활을 정리하는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그해 겨울에 모든 짐을 포장해서 수하물로 보내버렸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신중히 생각해 보라며 극구 말렸지만 이때 결심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서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2008년 12월에 첫 발을 디딘 필리핀은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생소한 곳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고, 필리핀어인 따갈로그(Tagalog)가 섞인 영어 발음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빌리지 안에 마련한 3층짜리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홈스테이를 운영하면서 한국에서 데려온 학생들에게 영어연수를 시키며 생활을 하였는데 너무나 열악한 기존 학원시설에 실망하여 내가 직접 건물을 지어서 보다 나은 환경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경치가 좋고 탁 트인 공간에 약 1,000평의 토지를 25년간 장기 임대하여 어학원을 짓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이고 과감한 결단이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투자를 할 때는 내가 가진 돈의 최대 70%를 넘지 말라는 교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규모가 크고 공사기간도 예정보다 오래 걸리면서 퇴직금을 모조리 들이고도 공사대금이 모자라서 한국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겨우 완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물은 지었는데 운영자금이 부족하니 이미 이 사업은 초기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법인을 만들어서 사업허가를 받고 현지인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을 20여 명 모집한 후 드디어 오픈을 하여 영어캠프를 진행하였는데 사업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내게 무슨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겠는가? 캠프 대금에서 이것저것 떼고 나니 순수익으로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남들은 캠프 몇 번 하고 나면 일 년은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번다고 하던데 나는 이게 뭐람.


결국 2년 정도 운영을 하다가 수입은 거의 없고 매달 지출되는 교사들 봉급이 너무 부담스러워 어학원 사업을 접게 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2달 동안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무념무상으로 지내다가 기껏 큰돈을 들여 지은 건물을 그냥 비워두고 있자니 너무 아까워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숙박시설로 재이용을 해보기로 하였다.

  현재는 ‘필리핀에 있는 내 집 같이 편안한 쉼터'를 모토로 한인민박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여 전 세계 각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의 교회에서 필리핀 선교활동을 위해 선교단체가 오기도 하고, 러시아에서 동호회 그룹이 오기도 했으며, 멀리 유럽지역에서도 여행을 위해 찾아주니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어느덧 15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필리핀의 정치·경제·문화·사회·교육 등에 어느 정도 눈이 뜨였고, 이런저런 경로로 전해 들은 각종 정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필리핀 생활에 웬만큼 익숙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비수기에는 필리핀 국내에 있는 보홀섬, 민다니오섬, 민도로섬 등과 주변 나라인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으로 자유여행을 다니며 은퇴이민생활에 차츰 젖어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새 희망을 가지고 맞이한 2020년이 채 열리기도 전인 1월 12일 낮에 따알화산섬 안에 있는 따알화산이 대폭발 하여 화산재가 분출되고 용암이 흘러내렸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화산지역에서 생생하게 재난을 경험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짜 재난영화에서나 보던 그 장면들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밤이 되자 내가 살고 있는 실랑(Silang) 지역 전체가 정전이 되고 단수가 되어 온 세상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토록 아름다웠던 정원이 잿빛 화산재에 뿌옇게 덮여 있었다. 약 2주 후에 수도시설이 복구가 되어 집안 전체를 덮고 있던 화산재를 걷어내고 물청소를 하여 거의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불행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다더니 약 1달쯤 후 화산폭발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무렵 이번에는 코로나 사태가 터져버렸다. 지역 한인회에서 나눠주는 마스크를 받아오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도로가 봉쇄되고 마을과 마을이 통제가 되면서 통행증 없이는 집밖으로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 여파가 3년이 훨씬 지나도록 계속 이어져오다가 2023년 후반기 들어서야 모든 재난상황이 종료되고 예전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그래도 언젠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왔는데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우리 집 가훈이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였는데 지금은 나의 생활신조가 “버티면 이긴다”로 바뀌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고단해도 나의 도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의 찬란한 인생 졸업의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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