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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24. 2024

그리움

 막내가 예뻐서 매일아침 눈만 뜨면 등에 업고 계셨다는 울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 얼굴도 기억 못 하는 7 남매 중 막내이자 5 남매 중 맏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어머니 마 져 내가 여고 1 학년 때 돌아가셨지만 어릴 적 부모 잃은 슬픔과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면서 철없이 살아왔다. 아마도 어린 막내가 가여워서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왔기 때문인가 보다.


 오빠 세분과 언니 한분이 먼저 세상을 떠난 지가 오래이고 지금은 언니 두 분과 나 세 자매가 살아있다. 돌아가신 오빠들과 큰 언니는 나의 부모님과 같은 존재들로 남아있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을 느낄 때면 그리운 오빠들과 언니가 부모님보다 더욱 생각이 난다.


 깡마르고 가녀린 여동생의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주며 사랑의 눈길로 미소 짓던 나의 오빠들! 여고시절 내 교복의 흰 옷깃을 빳빳하게 다림질로 잘 살려주던 다정스런 큰 언니의 고운 손. 막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핑크색 공작실로 커다란 스웨터를 떠주던 둘째 언니.               

                   

 나는 왜? 그때 그분들의 고마움과 사랑을 몰랐을까?

이제야 나이가 들고 보니, 낙엽이 뒹굴며 쌓이는 만큼이나 사랑과 고마움,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사춘기 어린 시절 웃음이 많았던 작은 언니와 나는 별것도 아닌 일로 이불을 뒤 집어 쓰고, 큰소리로 깔깔대며 웃고 굴다가 유난히 예절이 바른 둘째 오빠에게 들켜 그 두터운 손으로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귀싸대기를 맞으며 혼이 났다.  


 지금도 가끔 그 아픔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오빠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 없이 본대 없는 아이들로 성장할까 봐 그렇게 혼을 내준 둘째 오빠 덕에 잘 자라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꼭 둘째 오빠를 닮은 자그마한 체구에 키도 작은 유난히 예절이 바른 것까지 닮은 남편의 시댁 맏 며느리로 1남 1녀를 둔 나는 시댁의 1년에 11번의 제사를 30년 동안 지내왔다.


 시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나의 의지대로 제사를 점점 줄이고 있었지만 나도 이제 황혼 길에 접어들어 7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생 여정의 길에서 명절날 차례 상도 버겁고 힘이 든다.  


 추석이 다가오는 9월.

 돌아가신 임들의 명복을 기리며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가슴에 고이고이 넣어두고 간직하자.


  9월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 페티김 노래 -

 

 - 9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며 꽃잎이 지는 소리 꽃잎이 피는 소리  

   가로수에 나뭇잎은 무성해도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이 지고

   쓸쓸한 거리를 지나노라면 어디선가 부르는 듯 당신 생각뿐


   낙엽을 밟는 소리 다시 들으면 사랑이 오는 소리 사랑이 가는 소리

   남겨준 한마디가 또다시 생각나 그리움에 젖어도 낙엽은 지고

   사랑을 할 때면 그 누구라도 쓸쓸한 거리에서 만나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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