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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해지고싶다 May 06. 2024

30대 외벌이 가장의 일상이야기(9)

노란띠

  봄이가 태권도를 다닌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대근육 발달이 조금 느린 봄이라 어떻게든 체육활동을 시키고 싶어 이것저것 도전해 봤지만 전부 실패했다.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시도였던 태권도만큼은 재밌는지 매일 집에서 발차기연습을 하며 '태권'을 외치고 있다.


  그러다 태권소녀는 드디어 큰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생애 최초로 시험을 치게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은 노란띠 승급심사! 생애 첫 시험에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봄이였기에 응원의 한마디를 했다.


  "봄아, 떨어져도 괜찮아! 다음에 또 하면 되는 거지."

  "싫어! 친구는 핑크띠야. 나도 얼른 핑크띠 되고 싶어."

  

  먼저 승급한 친구가 부러웠던 봄이는 서둘러 친구들을 따라잡고 싶었나 보다. 귀여운 녀석. 하긴, 시험을 쳐본 적이 없으니 긴장을 할 리가 없지...


  봄이가 승급식을 치르는 날, 하필 이런 날에 야근을 하느라 늦게 집에 들어왔다. 바빠서 결과도 못 물어본 아빠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희미한 간접등 아래에 당당한 노란띠를 전시해 놓았다. 누구나 따는 노란띠일 뿐인데도 봄이의 첫걸음마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긴장감을 뚫고 승급식을 열심히 치렀을 봄이 모습이 절로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했다. 이런 날 같이 있어주지 못해 너무 아쉬웠기에 아침에는 '꼭 안아서 축하해 줘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잠에 들었는데... 아직까지도 난 봄이에 대해 잘 모르나 보다.


  새벽 4시. 겨울이와 자던 봄이가 갑작스레 번쩍 눈을 뜨더니 두리번거렸다. 곤히 잠든 나를 발견하자 내 옆에 와서 눕는다. 그러더니 반짝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마구마구 내 머리를 흔들었다.


  "아빠, 일어나 봐. 나 이제 노란띠야!"

  

  새벽에 갑자기 깨워 어리둥절했지만 혹시나 내 시큰둥한 반응에 상처를 받을까 어서 대꾸를 해줬다.


  "우와, 우리 봄이! 정말 대단한데? 어떻게 한 번만에 통과했대!"

  "아빠, 친구는 다섯 번이나 해서 통과했대!"


  한참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재잘거리는 봄이. 반짝이는 보석을 봤는데 어떻게 아빠가 7살 태권소녀의 입을 닫겠는가. 침대에서 몸을 바로 하고 봄이를 안아주었다. 내 품에서 한참을 재잘재잘거린 참새는 1시간이나 지나서야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등을 토닥토닥해 주자, 내 품에서 나와 내 팔을 베고 새근새근 다시 잠에 들었다.


  하지만 이미 홀딱 잠이 깬 나는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아직 출근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행복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 기억에 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자랑을 하던 봄이가 한참이나 내 가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꿈속에서조차 키득키득거리며 자는 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반차를 내자. 아빠와의 새벽만담에 피곤할 봄이가 늦게까지 푹 잘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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