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의 세계
"난 아빠가 출근을 안 했으면 좋겠어."
봄이가 잠들고 나서야 들어오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전에 나가다 보니 평일에는 봄이를 거의 볼 시간이 없다. 거기다 최근에 이사를 했기에 봄이는 친하던 친구들과도 멀어져, 엄마와 단 둘이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관심과 사랑에 목마른 외로운 7살 작은 공주님은 본능적으로 아빠를 자꾸 찾는다. 그러다 보니 입버릇처럼 내가 출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자꾸 얘기하는 듯하다.
가만히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부모님께서는 맞벌이였지만 나는 외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내 옆에서 나를 돌봐주시던 할머니도 계셨고,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던 동생들에, 길 하나 건너면 있던 사촌동생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같이 놀던 동네 골목 친구들까지.
우리는 평일에 학교를 다녀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네 놀이터로 모였다. 해가 지고 나서도 전봇대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한참을 놀다 들어가면, 할머니께서 맛있는 저녁을 차려놓으셨다. 부모님께서 돌아오시고 잠깐 공부하는 척하다가 잠시를 못 참고 동생들과 히히덕거리며 놀다가 아주 늦은 밤이 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늘 내 곁에 누군가 있던 나의 유년시절에 외로움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봄이가 외로울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직 이사한 곳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만 생각을 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봄이가 혼자서 인형놀이를 하며, '엄마가 요리하고 있으면 나는 누구랑 놀지?' 라며 인형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작은 공주님의 세계에는 엄마와 아빠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오늘만큼은 해가 지기 전에 퇴근을 한다. 북적거리는 퇴근길 지옥철 안에서 겨울이에게 연락한다, 지금 퇴근한다고. 그러자 웬일이냐고 반색하며 봄이와 마중을 나오겠다고 한다. 지하철을 내려 조금 올라가니 아파트 단지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장난꾸러기가 있다. 저기 멀리서 나를 봤는지 쏜 살 같이 달려와 나에게 안긴다. 이미 저녁을 먹은 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들어가기로 한다. 밤늦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왔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잠자리에서도 한참을 삐약삐약 거리다 잠에 든다.
잠깐 함께한 저녁시간으로도 행복한 얼굴로 잠든 병아리의 얼굴을 보니 괜히 마음이 더 아프다. 육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늘 남들에게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아이의 마음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아침잠을 포기하고 조금 더 일찍 출근하더라도, 저녁시간만큼은 함께 보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