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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1. 2024

차별하는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 ‘학부모가 교사를 아동 학대로 고소했다.’ 작년 여름, 교권 하락과 관련한 안타까운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전부터 교권 하락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뉴스를 보니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교사가 되면, 한 번 이상은 마주할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가 되었을 때, ‘정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해졌다. 포털 사이트 속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 헤드라인은 조금 부풀려서 쓴 감이 있어도, 핵심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어두운 터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내 발로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며칠 후에, 떠나는 교육 여행이 걱정되었다. 교육 여행이란, 쉽게 낮에는 학생들을 수업하고, 남는 시간에는 주변 여행을 다니는 활동이다. 즉, 여행 외에도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므로, 학생들과 며칠간 함께 지내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생에게도 일종의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가는 학교에는 뉴스에 나올만한 학생이 없기를 바랐다. 무던한 아이들을 만나길 기도했으며, 만약 뉴스에 나올만한 학생이 있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시뮬레이션도 머릿속으로 여러 번 돌렸다. 가기 전부터, 걱정거리가 가득한 여행이었다.     


나주시의 한 고등학교로 5일간 교육 여행을 떠났다. 걱정은 잠시 접어 두고, 학생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업은 대개 다양한 질문을 통해 나, 관계, 세상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깊이 있는 대화와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해, 5~6명씩 조를 이뤄 활동했다. 


나는 수업 첫날에 1학년 여학생 4명과 같은 조를 이뤘다. 여자아이들과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같은 성별을 가져서인지, 관심사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맛집과 여행할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추천도 받았다. 특히 좋아하는 아이돌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최애 멤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달랐다. 이상하게 남학생들과 친해지는 것은 어려웠다. 묘하게 다가가는 것이 망설여졌달까. 단순히 성별이 달라서가 아니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편히 물어보는 관심사 질문도, 남자아이들에게는 입이 잘 안 떨어졌다. 아마 ‘그 나이대 특유의 무뚝뚝한 반응 혹은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아이들에게 더 일찍 마음을 열걸

그래도 이대로 아이들과 어색하게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3일 차에는 일부러 친해지지 않은 남학생들이 있는 조를 들어갔다. 근데, 이게 웬걸?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그 남학생들은 너무나도 생각이 깊은 아이들이었다. 또, 누구보다 수업에 진중히 참여했다. 내가 머릿속으로 걱정했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실에 남아서 우리 대학생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그만큼 우리를 따르고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교육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든 생각은 한 가지였다. ‘더 많은 사랑을 줄걸’. 나의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더 일찍 다가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렇게나 착하고, 선생님을 따르는 아이들이었는데....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질문의 꼬리를 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나는 여러 교권 하락 뉴스를 보며,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일명 '금쪽이'라 불리는 학생을 지도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티비에 나오는 금쪽이들의 대부분이 남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금쪽이 = 남학생’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자연스레 남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겁이 났던 것이다. 참으로, 멍청했다.     


내가 차별하는 선생님이었다니!

그동안 교사는 학생들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학생들을 평등하게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은 교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차별하는 선생님이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먼저 말도 걸고, 다정히 잘 대해주는데 나에게는 선을 긋는 선생님. 나의 행동으로, 그 학생들은 서운함, 속상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진심으로 미안했다. 정식적인 교사는 아닐지라도, 교육 봉사로 간 학교, 그 수업에서만큼은 선생님의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역할을 잘 해내기는커녕, 편견이 가득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부끄러웠다. ‘아직 나는 갈 길이 멀구나’     


여전히 교실에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학생을 가르치게 될까?’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아이들이든 그 아이들을 애정하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마주할 것이다. 또, 앞으론 편협되고, 잘못된 생각을 잣대로 삼아 아이들을 멋대로 판단하지 않기를. 내가 더 많은 학생을 품어줄 수 있는 선생님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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