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여름 밤
4년 전 여름 밤, 나는 K¹과 함께였다. 서울이었지만 경기도와 더 가까웠던 지역, 어느 한 빌라의 옥상에서 낡은 평상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밖이었는데도 후텁지근했다. 삼겹살 2인분에 소주 1병을 부족하게 나눠 마신 후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우리에겐 돈도 직업도 없었지만, K¹의 누나가 살던 오래된 반전세 집은 있었다. 3층짜리 빌라였는데, 3층에서 살았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가족들에게 비밀로 한 채 같이 살았다.
빌라는 아주 낡았다. 1층에는 현관문을 항상 열어 놓는 노부부가 살았고, 그 앞집은 건물주인 중년 부부가 비워 놓은 채였다. 2층에는 30대로 추정되는 여자가 살았는데, 종종 물이 샌다며 집에 찾아왔다. 그때마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머리만 긁적이며 다시 돌아가긴 했지만. 그 여자네 앞집에는 누가 사는지 모르게 항상 잠겨 있었다.
K¹과 나는 친구를 만나거나 면접을 보러 갈 때 말고는 24시간을 붙어 있었다. 사실 친구들을 만나기에도 생활비가 빠듯했기에 자연스레 한 공간에 오래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외식을 한 날이었다. 집은 덥고 선풍기 소리는 무차별적인 소음처럼 느껴져서 우리는 일단 현관을 나섰다. 좁은 신발장에는 다섯 켤레의 신발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었고, 늘 그랬듯 내가 먼저 짝에 맞게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내가 현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는 샌들을 주섬주섬 신고 나왔다. 가파른 옛날식 계단을 먼저 내려가는 건 그였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우리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의 몇 안되는 고깃집이었다. 녹차 잎을 먹인 한돈을 사용한다던 그 집 삼겹살은 1인분에 1만3000원, 소주는 4000원. 그래도 서울이라고 가격이 꽤 셌다. 삼겹살 2인분 2만6000원에 소주 1병까지 하면 딱 3만 원이었다. 우리는 술을 좋아했지만 외식할 때 밖에서 소주를 사먹기엔 늘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부족한 술을 채워야 했다. 집 앞 슈퍼에서 소주 640㎖짜리 페트병을 사면, 돈을 1000원가량 아끼면서도 술은 반 병 정도씩 더 먹을 수 있었다. 그날은 슈퍼에서 새우깡과 짱다리 오징어, 페트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바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와 내 기준으로는 아주 적은 양의 소주를 마신 거였지만, 여름 밤 더위에 취기가 올라왔는지 낭만 찾는답시고 옥상에 좀 눕고 싶었다.
평상에 누워 본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안 보였다. 더운 바람만이 가끔 불어왔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데이먼스이어의 'yours'를 틀었다. 잔잔한 베이스를 동반한 전주가 흘러 나왔다. 우리는 가만히 누워 머리를 서로의 쪽으로 기댔다.
“집에 가서 영화 보면서 마시자.”
“영화 뭐? 또바웃타임?”
우리는 킥킥 웃었다. 그는 나 때문에 영화 <어바웃타임>을 7번 넘게 본 사람이었다. 나 때문에 질려 버렸다며 '또'바웃타임이라고 칭하곤 했지만, 정작 틀어놨을 때 더 집중하는 쪽은 그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기분을 전적으로 맞춰 주고 있었다는 걸. 면접에서 연달아 다섯 번째 떨어진 날이었다.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티내진 않았지만 그도 직감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다. 항상 저녁에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고민하던 그가 먼저 “오늘은 나가서 먹자”며 내 손을 이끌었었다.
잔잔한 노래 몇 곡을 더 듣고 집으로 내려왔다. 늘 그랬듯 술상을 차렸다. 새우깡 하나에 짱다리 하나, 차릴 것도 없는 상이었다. 소주와 종이컵 두 개까지 꺼낸 후 그의 노트북으로 영화를 틀었다. 그날따라 술 마시는 속도는 배로 빨랐고 취기가 올랐다. 영화 중후반부로 갈수록 아는 내용이라 그런지 집중력이 흐려졌다. 달달 거리는 선풍기와, 왠지 모르게 피곤 가득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좁은 방이 보였다. 이 방에 있는 거라곤 23살부터 2년을 넘게 만난 우리와, 낡은 기타 하나,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손잡이가 없는 옷장이 다였다.
문고리에는 내가 오늘 입은 면접용 정장이 걸려 있었다. 이마저도 없어서 대학 선배로부터 빌린 거였다. 아까 면접장에서 망신을 당했던 게 생각났다. K¹에게는 말하지 않았었다. 다 대 다(多對多) 면접이었는데, 나에게는 지원 동기만 묻고 다른 질문이 일절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최근 이슈에 대한 생각, 역경을 이겨냈던 경험 등의 여러 질문들을 이미 한 후였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면접관의 말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스펙이 부족할 순 있지만,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나는 정확히 봤다. 5명의 면접관 중 3명의 면접관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지원자 3명이 “쟤 뭐야?”하는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한 면접관이 말했다.
“그런 식상한 말은 누구 입에서나 나오는 건데요. 그럼 그 지식을 한번 자랑해보겠어요?”
말문이 턱 막혔다. 나름 전날 밤까지 뜬눈으로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넘는 질문을 듣고 나니 입이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저 새끼, 나한테 원한 있나……. 왜 나한테만 따져 묻듯이 해……. 한참을 도화지 상태였다가 입을 다시 떼려고 했을 땐 이미 면접이 끝나고 난 후였다. 면접장에서의 그 일은 너무 쪽팔려서 K¹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내가 면접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알고 있던 터였다.
어느새 나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젖어 있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면접관 그 한 명 때문에 떨어진 것도 아닌데 화가 났고 한심스러웠다, 나 자신이. K¹이 눈물 범벅된 내 얼굴을 속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네 잘못 아니라는 거 알잖아……. 앞으로 진짜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말자.”
괜히 짜증이 났다. 화낼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몰라? 나도 안다고. 아는데, 자꾸 그게 잘 안 되니까 화가 나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모난 말이 툭, 튀어 나왔다.
“너는 모르잖아. 내 분야도 아니니까 내가 어떤 거 때문에 속상해 하는지도 잘 모르잖아.”
할 말을 잃은 듯한 그의 앞에서 괜히 한 번 더 툭,
“영화 안 봐?”
망했다. 그의 표정은 살피지도 않은 채 담배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그의 앞에서 모자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나보다 1살 연하였다. 내가 1살 연상이니까, 행동이나 말을 '누나'답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있었지만 항상 잘 안 됐다. 담배를 물고 생각했다. 들어가서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집에 들어가니 그는 침대에 웅크려 잠들어 있었다. 소주는 냉장고에, 과자와 오징어는 부엌 찬장에 잘 정리된 채였다. 이어폰을 낀 그의 베갯잇이 축축했다. 나는 속옷 차림으로 그의 옆에 슬며시 누웠다. 미안해, 잘 자. 그의 뒤에 대고 속삭이는 내게서 담배 냄새와 고기 냄새가 물큰하게 뒤섞여 풍겼다.
언젠가는 몇백년 만의 폭염이라며 특보가 내릴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주말 오전이었다. 암막 커튼 너머로도 뜨거운 햇볕이 느껴졌다. 아랫층 어딘가에서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몸을 뒤척이자 깨어있던 그가 나의 몸을 살짝 안았다. 시끄러운 소리는 30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곧 화장실에서 솨아아, 솨아아, 하며 알 수 없는 물 펌프 소리가 났다. 그가 일어났다. 그가 문을 열자 코를 찌르는 오물 냄새가 숨 참을 틈도 없이 밀려 들어왔다.
“무슨 소리야? 이 냄샌 뭐야?”
“배수관 역류했나 봐. 지금 화장실 다 난리 났어. 넘치고…….”
화장실에 가보니 그런 난리가 없었다. 변기를 통해 온갖 오물들이 역류해 천장까지 분출해 있었고, 오물들과 함께 슬리퍼와 비누, 샴푸 등등 욕실용품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빌라 주민들이 모여 있던 1층에 가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까지 지속된 폭우 때문에 배수관이 역류했다는 것 같았다. 빨래를 위해 화장실 앞에 모아 두었던 내 옷들도 오물에 오염돼 있었다. 주로 내가 좋아하는 흰색 옷들이었는데 다시는 입을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빨기 위해 화장실 세숫대야에 넣어둔 속옷들도 모두 오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건물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2시간 쯤 뒤 배수관 수리 기사가 온다 했다. 다행히 방까지는 오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우리는 방문을 굳게 닫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역겨운 냄새 때문에 마스크를 두 겹씩 낀 채였다. 유튜브를 각자 보다가, 웃긴 영상이 나와서 같이 보다가, 서로의 성기가 닿아 만지며 달아 오르다가, 섹스를 했다. 마스크 때문에 키스도 안 하고 섹스만 하다가,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서로 낄낄 웃었다.
몇 시간 후 수리 기사가 도착해 막힌 곳을 뚫어 주었고, 우리는 드디어 방에서 나갈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방에 있으라고 한 뒤, 걸레를 들고 화장실에 남은 오물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샤워기로 천장에 물을 뿌린 뒤 변기에 올라가 천장을, 내려와서는 세탁기 전면을, 바닥을, 세숫대야를, 창틀을, 박박 닦았다. 나는 벌거벗은 채 이불 속이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방 안에만 있다 보니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땐 이미 그가 오물 묻은 내 옷들을 세탁소에 맡긴 후였다. 도저히 깨끗해질 것 같지 않던 화장실은 말끔히 청소돼 있었지만, 변기나 세탁기 뒤쪽에 미처 지워지지 않은 오물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오물들을 샤워기로 다시 한번 씻어 내렸다.
그 뒤로 몇 달 동안은 내가 면접에서 탈락할 일도, 배수관이 역류할 일도 없었다. 면접을 본 일도, 폭우가 내린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K¹과 나는 이별을 했다. 그가 면접에서 먼저 합격한 후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가 일을 하게 되면서 더욱 자주 외식을 할 수 있게 됐고, 그는 기뻐했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가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게 미칠 지경으로 싫었다. 그가 회식을 하거나 동기들끼리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올 때면 자는 척을 해야만 했다. 그의 얼큰하게 취한 얼굴을 웃으면서 맞이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속좁게도 먼저 취업을 하게 된 그를 질투했는지도 모른다. 속좁은 나는 먼저 이별을 말하고야 말았다.
나는 그와 떨어져 있을 때 전화로 이별을 고했다. 그는 나에게 자기 없어도 잘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물기가 잔뜩 맺혀 있었다. 곧 있으면 숨도 못 쉴 정도로 흐느낄 터였다. 막상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과 콧물이 뒤엉켜 쉴 새 없이 흘렀다. 그 없이 정말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음소거를 해놓고 몇 분의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내가 내린 대답은 이별이었다.
며칠 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를 보았다. 같은 건물에서였다. 당시 그가 붙었던 회사는 거기가 아니었는데, 같은 건물의 회사를 다니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한층 길어진 곱슬곱슬한 머리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채였다. 우리는 당연히 서로를 모르는 척 해야만 했다. 각자의 동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를 건네기에도 어색한 시점이었다. 웃으며 스쳐 지나가는 그에게서 그 여름밤 옥상의 냄새가 났다. 냉방(冷房)의 건물이었는데도 더운 바람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