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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삼도 일상탐구 May 07. 2024

커피 클럽 - 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는 이유

국제 연맹 창설 그리고 전쟁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 1차 세계대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전까지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상호파괴행위에 질려버린 당시 강대국들은 이번 전쟁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일념 아래에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의 요구로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 LN)'을 창설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립주의를 고수하려는 미국 의회의 반대로 미국이 국제 연맹에 가입하지 못하게 되면서 창설 초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의도는 좋았고, '상임이사국'이라는 감투도 하나 준다니 가입한 국제 연맹. 그런데 막상 가입하고 나니 모든 나라는 평등하다는 국제 연맹에서 '상임이사국'이라는 감투는 책임만 늘어나고 이득은 없었다. 또한 각 나라를 제재할 수단 또한 없었기에 자신들의 이득과 상충되는 가입국들이 이탈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를 가속화시킨 사건이 '경제 대공황'이었다. 이후에도 대공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세계가 휘청거리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파시스트의 등장'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수많은 나라들이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면서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가져간다. 회원국인 체코슬로바키아가 당하고 있음에도 국제 연맹에 그나마 남아있던 강대국 영국, 프랑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국제 연맹은 이제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만다.


UN, 안전 보장 이사회


1차 세계대전 이후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일념 하에 만들어진 국제 연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2차 세계대전을 지켜봐야만 했다. 1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큰 파괴력으로 전 세계가 불타버렸고, 국제 연맹은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였다. 일단 아무것도 못하던 당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이름부터 UN으로 변경하고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소련을 상임이사국 자리에 앉혔다. 비상임이사국을 위한 자리도 만들어 두어 2년 임기로 변경되도록 만들었다.


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401011645001#c2b      경향신문

상임이사국 5개국과 비상임이사국 10개국이 모여 안건을 결의하는 회의를 '안전 보장 이사회'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통과된 안건은 가입국 전체가 따라야 하는데, 거부하고 싶어도 힘의 논리에 따라 거부할 수가 없다. 물론 통과되지 않도록 막는 방법도 있다. 상임이사국 중 하나가 거부권을 발동하거나 비상임이사국 10개국 중 7개국 이상이 반대하면 된다. 기존 국제 연맹의 평등을 버리고 이사국에 이권을 주어 이탈을 막고, 빠른 결의를 노린 것이다.


G4와 커피클럽


막강한 상임이사국의 권력은 많은 나라들이 침을 흘리게 만들었다. 비로소 국가들을 하나로 모을 동력이 공급된 것이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탄탄한 경제, 국가 인지도, 군사력 등 다방면에서 인정을 받는 강대국이어야 겨우 손 한 번 내밀어 볼 수 있는 자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나라는 전범국인 독일, 일본과 인도, 브라질이다. 이들은 G4(Group of Four)라는 연합을 만들어 상임이사국 진출 조건인 유엔 가입국 2/3 이상의 동의를 받기 위해 서로 돕고 있는데, 국제사회는 이들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그냥 봐줄 정도로 녹록지 않다. 여러 관계로 그물망처럼 얽힌 국제사회에서 당연하게도 이들을 막는 나라들도 존재한다. 정식명칭 '합의를 위한 연합(Uniting for Consensus, UfC), 속칭 커피 클럽이다. 아무래도 G4를 반대하려면 그만한 덩치를 가져야 하는데 반대세력은 대체로 약소국이니 국제 사회에서 손을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때문에 이들은 상대국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우리도 반대해 줄 테니 너희도 우리 따라 반대해 줘'라는 협력 관계는 단순하면서 효과적이었고 자연스레 모든 가입국이 G4를 반대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또한 외교를 통해 가입국 외에도 국가를 포섭하여 반대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은 본래 어떠한 연합체가 있지는 않은, 암묵적 합의에 의한 느슨한 연합이었으나 상대국들이 G4라는 이름으로 연합을 결성하고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한 왕성한 활동을 보이자 이에 질세라 이탈리아의 주도로 연합체를 창설한다. 커피클럽의 가입국으로는 대한민국, 파키스탄, 튀르키예,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아르헨티나, 캐나다 등 어디서 꿇리지 않는 쟁쟁한 나라들이 속해 있으며, 비가입국임에도 지지를 보내오는 나라들이 제법 많다. 2011년의 로마에서의 회의에는 120개국이 참여했을 정도이다.

커피클럽에 속한 나라는 대체로 상대국과 악연이 깊은데, 우리나라는 뭐.. 말 안 해도 다 알 거고, 파키스탄과 인도는 무력충돌도 빈번히 일어나는 불구대천의 원수이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표면적으로는' 유럽에 상임이사국이 3개나 존재한다는 이유로 독일을 막아서고 있다. 물론 실상은 전범국이면서도 유럽연합에 입김이 큰 독일이 안보리에서도 강해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와 멕시코는 브라질과 대립하고 있다. 이쪽이야 원체 사이가 좋지 않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서 멕시코가 아르헨티나의 손을 들어준 것 같다. 이외에도 캐나다를 필두로 많은 국가들이 상임이사국 확대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아무래도 눈치 봐야 하는 직장상사가 더 늘어나는 것은 싫으니까.



커피 클럽, 이름의 의미


사실 커피 클럽이라는 별명은 조금 웃기다. UN이니 국제연맹이니 안전보장위원회니 하면서 멋들어진 이름만 듣다가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G4라는 연합을 막기 위해 나타난 게 커피 클럽? 이름만 들으면 스타벅스에서 수다나 떨다 올 것 같다. 그런데 커피 클럽이라는 별명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처음 연합을 만들 때 이탈리아를 필두로 파키스탄, 멕시코, 이집트가 모여 설립되었는데 이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공통점이랄 게 단 한 개도 없었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접점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었고, 단 한 가지 상임이사국을 반대하는 국가의 존재만으로 모인 것이었다. 반대를 위한 연합 결성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관한 건 이미 암묵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커피부터 한잔 하시죠'라는 말이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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