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삶의 동력은 놀이입니다. 재미있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 나섭니다. 학교에 들어서는 자의 든 타의 든 학교공부가 삶의 동력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공부이니 공부를 벗어난 삶이 동력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한 공부가 동력일 때 힘이 들고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타의에 의한 동력은 때로는 일탈로 내몰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학교공부는 학생들을 지향점으로 향하게 합니다.
직업을 가지게 되면 보수와 진급이 동력이 됩니다. 자신의 직업에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몸값이 오르고 직급이 오르면서 삶의 만족감을 얻습니다.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 나이가 누군가는 40대에 누군가는 50대에 옵니다. 이때부터 삶의 동력이 떨어집니다.
삶의 동력은 지금의 자리에서 지향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에서 비추는 등대의 불빛입니다. 대부분의 50대 중반이 지나면 삶의 지향이 사라집니다. 은퇴 후 편하게 노후생활을 보내는 것으로 삶의 지향을 삼습니다.
며칠 전 단체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몸담고 있는 직업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분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관광을 다니고 때가 대면 단체로 식사를 합니다. 저녁이 되면 술자리에 삼삼오오 모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합니다. 이런 며칠을 보내며 다른 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지금 삶의 동력은 무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성취로 퇴직까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퇴직 후에는 연금 등으로 편안한 삶을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균 수명에 가까운 나이까지 새로운 동력 없이 삶에 표류하게 됩니다.
삶의 동력이 때로는 자신의 선택이 아닐 수 있지만 지향점은 삶을 단단히 잡아주는 버팀목입니다. 갈등도 있지만 크고 작은 성취가 따릅니다. 성취는 새로운 성취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역동적인 삶이 펼쳐집니다.
60세면 일반적으로 은퇴합니다. 이후에도 경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지향하는 바가 있어서가 아니라 삶의 수단을 얻기 위함입니다. 60 이후에도 25년 이상은 살아내야 합니다.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삶의 지향과 동력이 없으면 긴 세월을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격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퇴직 후의 동력을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여야 합니다. 나의 효용가치는 퇴직까지가 아닙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입니다. 나를 위하고 타인을 위한 효용가치는 끝나는 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움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배움을 편안한 삶과의 대척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배움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배움은 평생을 관통하는 동력입니다. 배움은 편안한 삶의 동력입니다. 배움은 나를 살게 하고, 남과 함께 잘 살 수 있게 하는 동력입니다. 배움은 인류 공동체가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의 심지입니다.
퇴직을 앞둔 사람들이 연금과 추가 수입으로 여생을 편히 살려는 모습에서 무기력을 보곤 합니다.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선배들의 삶이 그랬다고 내 길도 그 길밖에 없다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 일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불을 지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새로운 배움의 불씨를 살려 놓아야 작은 장작, 큰 장작으로 큰 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배움이 멈추지 않아야 삶의 동력은 계속됩니다. 꺼지지 않는 삶의 동력이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기로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