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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크 환자의 나날 Mar 20. 2024

책과 어린, 그리고 나 1

그냥 쓰는 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시면 집에 가득한 책장을 보며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했다.


어머니 아래로 동생들이 넷이나 있어 책은 아이용, 대학생용, 전공서적 등등 연령과 분야에 가림 없이 책들이 많았다. 이상하게 공부하는 것보다 그저 소설이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쉽기도 했었고, 책을 다 읽으면 가족들 모두가 칭찬을 해줬기 때문에 호승심으로 일부러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물론 전공 서적이나 철학 등의 알 수 없는 말들은 내 경험과 생각으로 체화하기는커녕, 하루만 지나도 바람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자랑하지 못한 날에는 다음날 그 책을 다시 읽었다. 밖에 나가 뛰어노는 시간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놀면서도 책 내용을 잊을까 불안했다.

 

독서는 나에게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그냥 하루종일 뒹굴며 노는 것은 일하는 어머니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고 (하지만 죄책감만큼 덮기 쉬운 것이 없어 무지막지하게 논 일도 많았다.) 독서를 계속하면 내가 공부를 안 해도 혼나지 않았다. 나의 독서는 학업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다. 게다가 컴퓨터와 게임들이 속속 나오는 시기, 책을 읽는 모습은 또래 동네 아이들에 비해 철들어 보이고, 어른들에게 나는 결코 의도치 않았던 학업에 열중하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었다. 나는 이 예상치 못한 효과에 국어 성적만큼은 잘 맞으려 시험 때만 되면 밤을 새웠다. 이렇듯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쩌다 보니 약간 멋들어지게 보이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때가 되어서야 먼지도 쌓이듯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다.  


 언젠가 책을 읽어야 해서 땅따먹기를 그만두고 집에 가려할 때, 친구가 물었다. 너는 커서 작가 할 거냐고. 아무 생각 없던 나는 그냥 잘 몰라, 작가 하면 돈 많이 못 번대 하고 집으로 뛰어갔다. 나는 오히려 작가가 되는 길은 너무나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소설들 그리고 시를 보면 정말 잘 썼기 때문에 초등학교 3, 4학년으로 하루 일기 적기도 힘든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기행으로 보였다. 그때 당시에 한의사가 돈을 잘 번다고 들어 일단 장래희망은 한의사로 적어내는 터였기에,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을 펼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딱히 변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인생을 건 거대한 회피가 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설령 작가가 되지 못해도 딱히 눈총 받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고 있어도 될 것 같은 그런 직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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