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잊고 있던 내 취향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근처 카페로 간다. 같이 간 사람들 중 한 명이 주문을 받는다. 아메리카노 한 잔, 카페라테 한 잔, 유자차 한잔. 주문을 접수하던 사장님은
"아메리카노는 연하게 맞으시죠?"라고 주문하는 직원에게 묻는다.
'아메리카노 연하게??' 많이 익숙한 말이다. 이 카페는 내가 점심을 가끔 혼자 먹게 될 때,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 세트를 주문하고는 책을 읽으며 점심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카페인에 취약한 나는 오후 12시 이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가끔 마시는 커피는 연하게 주문해서 마신다. 점심시간에 카페에 가는 나는 커피를 주문할 때 '연하게'를 붙여서 주문을 하는데, 사장님이 오랜만에 방문한 나를 기억하고는 반영해 주신 것이다. 카페에 가지 않은지 세 달은 넘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가끔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 우리 팀은 업무 특성상 2명씩 한 조가 되어 선후발대로 나눠서 점심을 먹는데 나와 같이 점심을 먹는 직원이 개인사정 상 결근하는 경우가 그렇다. 나는 그럴 때면 굳이 옆팀에 같이 가자고 부탁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읽을 책 두 권과 다이어리. 그리고 좋아하는 볼펜을 준비한다.
점심시간에 카페에 앉아있는 나는 주로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카페가 직장 근처다 보니 간혹 아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분들과 인사를 하고 사소한 안부를 묻다 보면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데 여러 번 실패해서 택한 방법이다. 주문한 런치세트를 먹으며 책을 보는 나는 사장님과 크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내가 떠난 자리는 티 나지 않게 말끔히 닦고 쟁반을 조용히 올려놓고 내가 있던 자리의 흔적을 말끔히 치우고 나가는 손님이다. 그런 나를 사장님이 기억해 주신 것이다.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얼굴만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나의 사소한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뜻밖의 기분 좋은 일이었다. 평생 서로의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일이 없을 것 같은 관계이지만 우리는 나는 사장님께 묘한 감정을 느낀다.
'애매하게 친한 사이'라고 검색하면, 결혼식 초청장을 보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부터, 축의금을 낼 건데 식장에 가지 않고 5만 원을 내야 하나, 식장에 가서 밥을 먹고 10만 원을 내야하나와 같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고민들을 올리는 사람들의 글을 볼 수 있다.
나와 사장님은 서로의 경조사에 초청장으로 보내는 사이도, 얼마간을 축의금으로 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