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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곰님 Dec 26. 2024

산을 오르는 일

바람소리, 눈 내리는 소리, 내 안의 소리

4개월 전, 조직 내 인사이동이 있었다. 송별회 자리에서 12월 한라산 등반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실제 한라산을 다녀왔다. 대설주의보로 부분통제가 된 상황이라 백록담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진달래 대피소까지만 갈 수 있었다. 시작은 같이 하나 자신만의 속도로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걷고 있었다. 눈 밟는 소리와 바람이 나뭇가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싸라기눈이 굴거리나무 위로 떨어지며 통통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바람소리를 듣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산을 오르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산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걷는 것은 좋아한다.

걷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은 다르다.

산에 오르는 것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정상에 올랐다는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산에 오른다.


일단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고, 그 하나만을 보고 산을 오른다. 나는 앞사람의 발자국을 보며 산을 오른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앞을 지났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면 과연 내가 먼 곳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앞사람이 낸 발자국을 따라 걷는 일은 쉽다. 그 사람이 밟은 자국을 밟으며 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우거진 나무가 아니라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여유 있게 눈을 들어 올린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는 일.


산을 오르는 일은 목표를 이루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힘들지만 많이 뿌듯한 일이라 나는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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