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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아래 Oct 17. 2024

내게 파란 하늘만 있었던 그때

우리 셋이 함께였을 때




아버지는 자주 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아버지, 엄마가 없을 때는 큰누나가 엄마, 아빠인 거라고.


지금도 우리가 모이면 가끔 그 얘길 하시며


그때 아버지가 그렇게 단단히 심어두어  동생들이 지금껏 나를 잘 따르는 거라고,


내 얘기엔 꼼짝 못 한다고 뿌듯해하신다.


동생들도 나도 매번 수긍하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굳게 믿고 계신다.


그건 모르겠고, 우리 삼 남매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확실히 애틋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막내동생이 태어났다.


누나 둘 밑에 태어나서 그런지, 남자아이지만 순하고 우리를 곧잘 따랐다.


막내 많이 어렸을 때는 여동생이 잘 돌봤다.


자기 몸집도 작은 아이가 아기를 얼마나 야무지게 업고 다녔는지 다들 신기해할 정도였다.


조금 크고 나서 막내 말을 하며 제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둘이 자주 싸워


나는 본격적으로 아버지가 말한 그 '부모노릇'을 시작하게 되었다.


야단을 치고, 나란히 벌을 세웠다.


그럴 때면 고작 한 살 차이였던 여동생은 팔을 들고도 눈을 치켜뜨며 치욕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사실 항상 내 마음속에 막내동생은 아기였고,


편애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지라 둘째는 그때부터 억울함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마 막내도 그 점을 적절히 잘 이용했을 것이고.



그즈음 아버지와 엄마는 양복점을 쉬는 날 없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운영했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 온 그 가게는


반 칸으로 줄어들었다가 내가 결혼을 하기 전 해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우리 삼 남매는 느슨한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함께 끈끈히 자랐다.


라면을 물에 씻어 먹고,


식탁의자를 연결해 이불을 덮어씌운 아지트에서 종일 머리가 아플 때까지 만화를 보고 나면 제비를 뽑아 집안일을 했다.


처음엔 흰 종이를 나누어 '청소'와 '설거지'를 적었으나,


얼마 뒤 막내도 같이 해야 한다는 여동생의 주장에 따라


'청소', '설거지', '정리정돈'으로 '공평하게' 하루의 마무리 의식을 진행했다.



그 기억들 속에는 우리 셋 밖에 없지만


이상하게 그 시절만은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초여름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할일없이 한 두 정거장을 앞서 내려 도로 갓길을 아슬하게 걸으면서 우리만의 모험을 하던 그날들


확실히 슬픔이 찾아오기 전이었다.


생생하게 재생되는 기억 속에는 파란 하늘이,


연둣빛 무성한 풀과 나무들이,


그리고 발갛게 상기되어 올라오는 열기를 느끼며 걷고 있는 우리 셋 만이 있다.


모험 끝에 기다리고 있는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함께.




긴 긴 먹구름이 몰려오기 전이었다.


그때 나의 하늘은 항상 하얀 구름이 평화롭게 떠 다니는 파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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