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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아래 Oct 09. 2024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



나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궁상맞지 않고 정말 내가 원하는 만큼 벌어서 쓸 수 있을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만.

일개 개인의 힘들었던 과거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래서 슬펐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그걸 소화해 내지 못하고 징징대는 소리로 들리지 않을지 하는 걱정은 늘 있다.


그래서 비밀일기장처럼 나 혼자 적어두고 봐야 할 거라는.


그럼에도 내가 써보려고 애쓰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본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아니다.


좋으니까? 그건 일부 맞다. 글을 쓰고 있을 때 좋다.


내가 자연스럽게 나로서 기능하는 느낌.


나를 가만히 두면, 나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을 쓰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 혼자 그것을 쓰고 말면 될 일이지,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은 뭐지?


나처럼 자신이 밉고 그래서 세상이 두려운 이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이다.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마치 내가 냅의 책을 읽고 느낀 위안처럼.


멀쩡해 보이고 어떨 땐 참 좋아 보이는데 나도 이상하게 고장 난 부분이 있다고. 그랬었다고.


찌질할까 봐 말 못 했던 얘기를 모조리 까발려서 '아 이 사람은 더 미쳤구나.' 안심할 수 있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좋다는 사실에 나도 그럼 좀 괜찮지 않을까.. 하고 자기혐오를 조금 덜어내주고 싶은 것.


멀쩡해 보이지만 실은 멀쩡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들킬까 봐 항상 무서운 사람들을 위해서.


내 귀에 살짝 그 비밀을 알려준 사람들을 위해서.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현실 속 그냥 나로 잘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당신도 그냥 당신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서.



​자주 죽고 싶지만 사실 그럴 용기도 없이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스스로의 가면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해받고 싶지만 망신당할 용기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겁이 많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서 아무거나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슬픔을 덜면 내 슬픔도 덜어질 거라고 믿으며


실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쓰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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