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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아래 Oct 09. 2024

햇볕에 앉은 노인의 하루

80이 되기 전에




화요일이다.


딸은 아주 극심한 월요병을 겪은 후, 화요병이 시작된 것 같고


아들은 누나가 주문한 삶은 달걀을 누나 몫까지 간단히 해치운 후 거실테이블로 시소를 타고 있다.


남편은 최근 새롭게 찾아온 불쾌한 메스꺼움의 증상이 살짝 있었고,


주말 동안 경험한 끔찍한 멀미증상이 다시 찾아올까 봐 조금 불안해한다.


나는 평소 같지 않게 일찍 일어나, 다들 자는 동안 평소답지 않게 샤워를 했다.


옷을 벗고 욕실 거울 앞에 서니 마른 몸이 눈에 들어온다.


옆으로 돌아 비춰본다.


앞뒤로 거의 부피감 차이 없이 가느다란 몸을 보며 아직 내가 다 낫지 않았나 보다 생각한다.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데 말이지..



모두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씩 해 준 다음, 조금 일찍 집을 나선다.


좋아하는 갈색 루이비통 가방을 어깨에 메고, 태블릿과 책 두 권을 팔에 낀 채 흰 운동화를 신는 동안


예전과는 다른 홀가분한 기분을 조금 느낀다.


모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것을 더 해주지 않고,


 각자의 몫으로 남긴 채 집을 나서는 것이 왠지 기분 좋았다.




밖으로 나오니 습기 가득한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흐린 날이 한 달 전만큼 편안한 기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며, 천천히 차를 움직인다.


이른 오전에 빈에 오는 것은 처음이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훈기와 작은 음악소리,


텅 빈 가게 안을 채우는 따뜻한 조명들이 편안하게 기분을 좋게 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찾아낸 입맛에 맞는 커피를 나름 커스텀 오더로 주문했다.


"과테말라 네이티보블랜드, 이 텀블러에 주실 수 있을까요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주세요. 연하게 마시고 싶어서요."


손님이 딱 한 명 앉아있던 터라, 오늘은 메뉴판을 좀 더 찬찬히 살펴보며


아침으로 가볍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게 있는지 살핀다.


기본 베이글을 하나 주문하고, '내' 자리에 앉아 태블릿을 열어 글을 읽는 동안


직원이 주문한 커피와 음식을 테이블에 가져다주었다.


7,000원을 지불하고 얻는 이 모든 것들이 과분하게 감사하다.


주말을 지나고, 아침에 차를 몰아 도착할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읽고, 때때로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한참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된다는 것이.




나는 60일의 병가 중이다.


3분의 1이 지났고, 마치 입원 환자처럼 매일매일을 치료와 회복만을 목적으로 살고 있다.


늘 그리던 햇볕에 나와 앉은 노인의 하루처럼 살아보고 있다.


물끄러미 앉아 종일 해가 질 때까지 사람들을 보고,


하늘을 보고,


짐작건대 생각을 하며.


그리고 그러던 중 확실히 하나를 알게 되었다.


숨을 쉬기 위해 고래가 물 밖으로 나오듯, 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너무 오래 숨을 참고 있어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숨은, 글쓰기였던 것이다.


이제 나는 80살까지 40년을 기다리지 않고, 때때로 햇볕에 앉은 노인의 하루를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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