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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아래 Oct 09. 2024

정신과에 처음 간 날

시작




공황발작이 있고 3일 만에 동네 정신과 병원에 앉아있다.


접수를 했지만 대기자를 알리는 모니터에는 내 이름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전날 제부가 주고 간 책을 꺼내 읽는다.


차분한 표지 아래 '죽지 않고 매일 살 수 있을까?'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작년 교직생활 중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내는 동안 이상하게도 '이제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절망에서 왔다.


행복하고 따뜻한 날들도 나를 진심으로 기쁘게 하지 않았고, 끝나지 않은 연극무대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인생이 본디 연극이라면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이게 아니었다.


내가 맡고 싶은 역할은 이게 아니었다.


흥행영화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독립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온갖 리스크를 감당할 용기와 자신이 없었고, 불평만 해내는 만년 엑스트라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이 세상과 내 마음의 색채가 심한 대비를 이루는 날에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공황발작이 왔다.


아주 갑자기.



책 속 그녀는 나보다 앞서 아마도 같은 일을 겪었고, 베트남으로 자신을 데려다 놓았다.


그곳의 온도와 습도가 그녀를 덥혀주는 것을, 싱싱한 망고 아이스티가 생기 잃은 그녀에게 색채를 불어넣어 주는 것을 나는 가만히 읽어 내려갔다.


책을 다 읽고도 내 이름은 아직 모니터에서 한참이나 아래에 있다.


같은 층 이비인후과에 갔던 남편이 먼저 진료를 끝내고 와서 내 옆에 앉는다.


그리고 조용히 내 무릎에 놓인 책을 가져가 읽기 시작한다.


평소에 한 번도 있지 않은 일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갑자기 왜 책을 읽어보는 건데?"


"궁금해서"



그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슬픔을 아는 사람>이다.


남편은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다. 나의 슬픔에 대해서.  왜나면 내가 아는 그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슬픔을 잘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그것을 궁금해한다.



남편의 감상평이 궁금하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슬픈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할까. 더군다나 남편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죽 훑어보고 덮을 줄 알았는데, 제법 오랫동안 남편은 착실하게 페이지를 한 장씩 넘겨가며 책을 읽는다.


"어때?"


"일단, 책이 굉장히 어둡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말이 이렇게 밥 먹듯 나오는 게 놀랍네. 뭐랄까 나한테 죽음은 정말 마지막에 오는 건데."


진지한 그의 감상평에 나는 웃는다.


예전엔 그가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라 싫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 좋다. 말갛게 개인 파란 하늘 아래 사는 그가 좋다.


적어도 그에게 흐린 날은 우산을 챙겨야 하는 그냥 그런 날일 뿐이다. 잠시 스쳐가는 하루일 뿐, 내일 해가 뜰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나는 흐린 날이 편안하다. 그의 첫 느낌처럼 어두운 것이 내 색인 듯 편안하다. 죽음은 늘 친구보다 가까이에 있다.


진료실 문을 드나드는 다른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마음껏 슬퍼했으면 좋겠다고. 숨길 필요 없이 아파하고 울었으면 좋겠다고.


한 여자가 들어간 지 30분 만에 빨개진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나온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당신은 그냥 아픈 거니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아픈 건 잘못한 게 아니라고.



내 이름이 불린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일단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밝고 환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넓은 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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