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만난 감정

<사랑은 길고양이처럼> 42화

by 양창식


사랑이 늘 특별한 장소에서 시작되는 건 아니다

가장 평범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공간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로 남기도 한다.

낯선 타인이었던 서로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며들기까지



오늘 밤, 집 앞 편의점에 들렀어요.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선 계산대 앞, 손에 들린 삼각김밥 하나를 올려두던 순간, 문득 당신이 떠올랐어요.


그 작은 공간,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그곳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랍고도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의 사랑은 참 소소하고 조용하게 시작되었죠.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하루의 장면이, 우리에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던 날이었어요.


처음 당신을 본 건, 그 편의점 계산대 앞이었어요.

나는 급히 먹을 것을 고르느라 바빴고, 당신은 내 앞에서 지갑을 찾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죠. “그냥 저 카드 쓰세요”라고 내가 말했을 때, 당신은 조금 머쓱한 얼굴로 웃었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았어요. 설마, 그 짧은 인사가 인연이 될 줄은 몰랐죠. 사랑은 늘 그렇게 시작되는 걸까요?


아무렇지 않은 순간들이, 나중엔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잖아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처럼요. 기차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이 빈 거리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며 사랑에 빠지듯, 우리도 편의점이라는 별 볼 일 없는 공간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쌓아 올렸어요. 당신이 계산을 마치고 나가던 날,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캔 커피를 마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여기 근처에 사세요?”라고 당신이 묻던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아, 이 사람과 다시 마주치고 싶다고.


이후 우리는 참 자주 편의점에서 마주쳤어요.

처음엔 우연이라 믿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비슷한 시간에 그곳을 찾고 있었죠. 퇴근 후 간단히 요기하러 가도, 새벽에 뜬금없이 컵라면을 먹고 싶어질 때도, 그 편의점엔 당신이 있었어요. 말이 없어도 괜찮았어요. 같은 라면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통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편의점 앞 작은 원형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던 날들이 있어요.

당신은 “이건 진짜 인생 조합이에요”라고 말하며, 늘 정해진 조합을 골랐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었고, 당신은 나를 보며 자주 눈웃음을 지었죠. 사랑은 꼭 멀고 특별한 곳에서만 피어나는 게 아니란 걸, 우리는 그곳에서 알게 되었어요. 감정은 포장지 없는 삼각김밥처럼 조용히 손에 쥐어졌고, 우리는 그것을 나누며 사랑을 익혀갔어요.


당신이 어느 날 삼각김밥을 슬며시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죠.

“이거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 작은 마음 씀씀이 하나에 가슴이 따뜻해졌어요.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내겐 그 어떤 고백보다 깊게 닿았어요. 아마 그 순간, 나는 당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따뜻함은 오래 머물러주지 않았어요.

우리 사이에 찾아온 균열은 아주 조용했지만 분명했어요. 만나던 시간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편의점에서 마주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죠. 나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갔지만, 당신은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았어요. 계산대 앞에 서도, 당신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고, 그날의 미소도, 따뜻한 말도 없었어요. 편의점의 불빛은 여전히 환했지만, 내 마음속 편의점은 이미 닫혀버린 것 같았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나를 마주한 날, 우리 둘 다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있었죠.

당신은 조용히 말했어요. “이제 우리는 같은 편의점을 다니지 않겠네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어요.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헤어졌어요. 우리가 만났던 곳에서, 그대로.


당신과 나눴던 소소한 이야기들, 나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빛, 당신이 쥐여주던 삼각김밥 하나. 모두 다 그 편의점 안에 남아 있어요. 그리고 내 마음 한구석에도.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작은 무대가, 그곳에 아직도 그대로 존재해요.


이 밤, 어디선가 같은 편의점 불빛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조용히 이 편지를 띄웁니다.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그 자리에서,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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