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무늬에 대하여
사도행전 10장, 새번역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35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종(托卵種) 조류가 있습니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습니다.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숙주 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입니다. 뻐꾸기 새끼는 경쟁자를 제거하고, 숙주새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독차지합니다. 탁란을 하는 뻐꾸기에겐 뻐꾸기만의 사정이 있습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인 뻐꾸기는 비행에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에 스스로 둥지를 틀 여력이 없습니다. 서식지에 머무는 기간도 짧아 새끼를 직접 기를 시간조차 부족합니다. 뻐꾸기에겐 탁란 외에 종족 보존의 방법이 없습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은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피아를 구분하고 강한 자에게 의탁해야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안정적 생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경계와 범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편과 저들, 자격 있는 자와 없는 자, 분류 행위는 인지적 생존 전략입니다.
최근에 아내가 며칠간 집을 비웠습니다. 아내가 돌아오자 강아지가 이전보다 더욱 치대고 어리광을 부립니다. 나는 그것도 동물이 가진 일종의 생존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호자 옆에서 그렇게 기세등등한 강아지도, 보호자가 사라지면 자신을 보호해줄 것 같은 다른 사람에게 꼬리치며 다가갑니다.
인간 또한 이 본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누구나 권력이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소속에 따라 정체성의 안정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고유한 무늬인 인문(人文)이 있습니다. 도덕 관념과 철학, 문화가 인간 삶의 고유한 결입니다. 나는 인문이 지향하는 진정한 가치가 바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거스르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습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베드로는 로마 군인이 머물던 집에 찾아갑니다. 자신의 스승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적군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 생존 본능과 진영 논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보입니다. 로마군의 집으로 향하기까지 베드로는 심리적 딜레마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 번뇌의 과정이 상징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 환상 장면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더라도, 동물적 본능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어 고넬료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뒤집고 타자를 환대한 그 걸음이야말로 참사람의 모습이자 인문의 실천일 것입니다. 나 역시 경계 앞에서 자주 머뭇거립니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채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 오늘도 나에게 남겨진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