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계모들은 대체로 사악한 여성으로 그려지곤 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계모=악녀'라는, 공식처럼 만들어진 이야기 속 흔한 설정에 대해 분개하곤 한다. 세상에 모든 계모가 나쁜 것도 아니고 계모가 문제라면 그 남편은 문제가 없겠느냐며 요목조목 실제 사실과 통계를 들어 따지기도 한다.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무척 맞는 이야기이지만.
이야기라는 것이, 특히 오래 전해 내려온 이야기라는 것은 그 이야기가 떠돌던 시기의 세상에 담겼던 온갖 생각과 마음의 총합같은 것이어서. 어린 아이에게 계모는 늘 나쁠 수밖에 없거나 혹은 나빠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 속 계모는 나쁜 여자로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건 어떤 면에서 바꿀 수 없는 심리적 사실이다.
대체로, 아이가 자라는 동안 자기 엄마라고 믿었던 엄마를 져버리고 싶은 시기가 거의 필연적으로 온다. 사실은 눈 앞의 저 이는 계모이고 내 엄마는 다른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는 매우 멋진 사람이며, 엄청 나를 사랑하고 굉장히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때가.
단지 아이의 요구와 엄마의 호응이 맞지 않을 뿐이어서, 혹은 엄마의 요구에 아이의 성향과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 혹은 그 둘이 가진 모든 감각과 모든 욕망과 현실의 한계와 필요가 뒤엉켜서,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엄마가 아니길 바란다. 그렇게 바라는 마음이 사실은 엄마를 마음 속으로 버리거나 죽이는 것과 같아서, 그런 마음을 가진 자신이나 눈 앞의 저 사람 중 한 명은 나쁜 존재여야 하고, 내 존재의 근원인 나의 엄마는 나쁜 사람일 수 없으므로 저 여자가 계모가 아니라면 엄마를 부정하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겨난 어떤 마음들을 가지는 시기가 대개의 아이들에게 올 수밖에 없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일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어느 순간에 확 들어친 자의식이란 것을 기준으로 세상과 주변을 보기 시작하면서,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이 볼 수밖에 없는 그와 다양한 방식으로 갈등하면서부터였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의식하며 차곡차곡 쌓였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성인 여성에 대한 불신이 모여모여, 사실은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바람이 희망처럼 반짝였던 시점을 기억한다. 언젠가는 나의 진짜 엄마가 나를 찾아내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그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시기를. 그런 바람이 단지 관계의 어긋남에서 오는 나의 소망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나서도 진짜 나의 엄마에 대한 바람이 오래도록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