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56

by 포근한 바람

도서관도 서점도 없이 학교 앞에 문방구 하나 달랑 있던 동네에서 방문판매가 유행이던 초등학교 때 그는 소위 '전집'들을 이것저것 집에 들였다. 당연 아이들 읽으라고 산 것일 터인데. 그는 큰 딸이 책을 읽는 모습을 매우매우 거슬려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어느 날 내가 함께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는지, 동네 아짐인지 어떤 어른에게 내 이름을 부르며

"우리 애가 책을 많이 읽어서......"

라며 자랑스럽다는 투로 말을 해서 깜짝 놀랐을 만큼 그는 내가 책 읽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흐음...... 아들이 읽었어야 했는데, 인가?'

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집중력이 좋은 건지 어쩐 건지,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잘 인지하지 못하긴 했다. 당연 부르는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꽤 자주 그의 화가 나를 향해 쏟아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당연 억울했지.


언젠가 그가 당신이 왜 책 읽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시아버지와 어린 딸, 두 부부가 매일을 버티기에도 벅찼던 시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직 장가 안 간 시동생이 단칸방을 차지하고 누워 빈둥거리며 '그 놈의 잡지(아마도 선데이서울)'를 뭐 대단한 거라고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다고.


아무리 자신이 읽으라고 사준 책이더라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더 거슬리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딸의 독서가 영 못마땅했던 것이었으니. 그는 시동생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저 시기 저 모습은 아마도 일거리를 잡지 못해 집에 있을 때의 아부지 모습이기도 했을 것이어서.


얘기 들어보면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는 그의 저런 속마음을 직접 들은 것이 언제였더라?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충분히 자리잡은 후였던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나로서는 부당하다고 느꼈던 나에 대한 그의 분노를 그의 입장에서 되짚으며, 그래 그랬으면 그럴 법도 하지,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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