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55

by 포근한 바람

쓰긴 쓰구나!

삼탕 째였다. 엄마가 오래 아픈 동안 그의 부재가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는데 나에게는 그게 축농증으로 왔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까지 내내 책상 서랍 속에는 휴지가 가득했는데, 무엇보다 조금만 집중을 하면 열기가 이마와 콧잔등으로 모여 코가 막히면 어디에 집중을 하기 어려웠고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엄마도 없고 아부지는 회사와 병원을 오가던 중에 여자 아이 둘만 생활했다고 하니 집에 세들어 살던 아짐들이 도와주었다고는 해도 뭔가가 부족하긴 했을 테다. 아직 보일러가 설치되기 전 시기여서 자동으로 물을 데울 수 없었고 마침 여름이라 늘 찬물로 머리를 감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문인지 감기에 호되게 걸렸는데 이후로 내내 코가 말썽이었다.


원래 그도 젊을 때 코 상태가 좋지 않아 이비인후과 처치를 받곤 했다 하고 나와 동생들 각각 축농증과 비염으로 고생을 했으니, 아마도 코가 약한 것은 내력이지 싶은데 거기에 어릴 때 걸린 감기가 축농증으로 넘어갈 때까지 방치한 것이 결정적이었을 거다.


그의 건강이 좋아진 후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수 있게 되고 나서 한창 치료를 받을 때는 매일 병원에 다니며 콧물을 빼내고 콧속에 약을 뿜어 넣고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먹는 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나중에는 엉덩이가 단단해져 바늘로 찌르기 어려울 만큼 오랫동안 성실히 치료를 받았으나 낫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위장이 좋지 않아져서 만성 속쓰림이 생기는 바람에 함께 시달리며 고생깨나 하다가.


어디선가 친정 부근의 한약방에서 용하게 약을 짓는다는 얘기를 들었나보다. 그와 둘이 외할머니 댁보다 더 깊은 산골 동네를 걸어걸어 찾아갔는데, 딱 티브이에 나올법한 늙수그레한 할아버지가 진맥을 하고 약재를 건네주었던가, 그냥 처방을 해주었던가 했다.


그 처방의 특이한 점은 삼계탕을 끓이듯이 처방된 모든 약재를 닭 속에 담아서 고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로 약재와 닭 삶은 물은 먹을 만했다. 먼 데서 아마도 비싸게 주고 지은 약이니 그는 약효가 제대로 나기를 바랐겠지. 그래서 같은 약재를 재탕을 해서 먹었다. 원래 약으로 먹는 것이었으니 맛이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먹을 만은 했고 재탕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는 재탕에 그치지 않고 같은 약재를 다시 우려 내밀었다. 더 이상 목으로 넘기기 어려울 만큼 쓰고 비려서 인상이 저절로 써지는 맛이었다. 병원 약이든 주사든 어떤 처치든 불평없이 받아들이는 편이었으나 그 약은 도저히 못 먹겠다고 고개를 저었을 때 한심해 하던 그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런 것도 하나 못 먹느냐고 말했던가. 혼을 내며 내가 먹다 내려놓은 그릇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켜고 나서 그는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정도의 맛이란 걸 인정하며 말했다.

쓰긴, 쓰구나.

그 이후 그 약에서 해방되었는데, 적어도 석 달은 먹었을 거다. 그 동안 한약방 할배의 또 다른 지시인 찬 음식과 밀가루 음식 먹지 말기도 충실히 지켰다. 그 후 신기하게도 다시는 축농증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으니. 그가 바란 대로 약효는 톡톡히 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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